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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마태 10장34절 해설~~요함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18 조회수2,789 추천수0 신고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마태 10,34-36)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해 주세요!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는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즉 팍스로마나라고 해서 로마의 평화가 유지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로마의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로마의 평화는 권력으로 누르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로마가 무력으로 누르고 있는 평화는 예수님이 주는 참

평화와는 다른 평화입니다. 가짜 평화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런 가짜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참평화를

주러 오셨는데 그 참평화는 예수님의 말씀인 칼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바오로 서간에 보시면 우리에게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평화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따를 때 오는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평화처럼

무력과 권력으로 누르고 있는 거짓 평화는 자기 안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들을 없애지 못하고 그대로 품고 평화인척 하고

있는 상황인데,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평화는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여,

곧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받아들여 그 말씀을 살아갈 때

겉으로 보기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들을 말씀으로 다 이기고

제거하는 과정에서는 분열을 겪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안락하게 누리고 살던 것들을 떠나는 여정은 우리에게 고통과 분열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지 않고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겪으셨던 고통과 아픔이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서 누리는 평화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평화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샬롬!


성경을 읽고 이해하실 때 조금 쉬운 방법은 이렇습니다.

 

지금 현재 궁금하신 어떤 한 구절만 가지고 묵상하시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지금 현재 그 말씀을 하시는 앞장과 뒷장을
서로 연결해서 묵상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오복음 10장의 경우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장입니다. 이러한 이해 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열두 제자들에게
어떤 각오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파견되어야 하는지 그걸 우리는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박해를 각오해야 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해야 하며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신 참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를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

바로 이어서 버림과 따름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시고 계시므로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텍스트와 버림과 따름을 말씀하시는

텍스트를 묶어서 살펴보시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통치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평화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무찌를 수

있는 힘있는 통치자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그렇게 힘 있는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자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나는 그런 평화를 주러 오지 않았다. 내가 주고자 하는 평화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평화를 누릴 수

있을 때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셨습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그렇듯이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가 빛과 어둠을 가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창조의 질서가 잡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은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육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때에 우리가 참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먼저 예수님을 더 사랑할 때에

부모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실행하려면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과 이웃과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치관이 달라서 부딪칠 때에 바로 마태오복음 10장 37절에서 39절을

묵상해 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목숨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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