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 성서 이야기] (4) 예수님의 선택과 결단 수난의 때가 다가오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파스카 음식을 드시면서 이미 배신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열두 제가 가운데 배신자가 나온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한 베드로의 장담은 허망하게 되어버렸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르 14,18) 이는 분명 슬픈 정보다. 그런데도 주님의 선택은 확고하셨다. 수난의 길을 가실 것이고 죽음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겠다는 결단이다.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예상대로 제자들은 주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체포되시는 순간 모두 다 달아났다. 주님께서 대사제에게 끌려가 부당한 판결, 조롱과 고통을 받으시던 같은 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였다. 처음부터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자신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셨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가르침이 헛된 것으로 여겨지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었을 것이다. 갈릴래아 지역에서 군중들에게 인기를 누리시는 예수님의 일들은 예루살렘으로 보고되었고 종교 당국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마르코 복음서에 나타난 종교지도자들과의 대립은 사실상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셨을 때부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마르 2,6-7). 그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자를 지붕을 뚫어서라도 당신 앞에 데려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고 앓는 이의 내면의 어둠도 보셨을 것이다.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유일하게 용서를 하실 수 있다고 믿어왔다. 대속죄날 대사제가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용서를 청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바로 그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믿음 없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볼 눈과 믿음의 은총을 받지 못하였다. 종교지도자들의 눈에는 주님께서 율법이 정한 단식이나 안식일 법, 부정한 것에 관한 규정을 잘 지키지 않으신 것으로 여겨졌다. 주님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사이들은 분통이 터져 오랜 시간 원수로 지냈던 헤로데 당원들과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한다(마르 3,6).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와 기적들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린 것으로까지 왜곡하기에 이르렀다(마르 3,22). 더구나 주님께서는 어린 시절의 고향 나자렛에서 조차 무시를 당하셨다. 요한복음서에는 벳자타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이후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주님께서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라고 하고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다는 이유였다(요한 5,18).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르 15,14)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요한 19,15) 수난을 조장하는 군중의 외침은 광기가 서려 있다. 악에 가담한 인간은 주님께 받은 모든 은혜를 배신하였다. 생명을 주러 오신 빛이신 분을 없애버리라는 아이러니가 일어났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루카 23,34) 그러나 예수님은 군중의 뜻대로 없애버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당신의 영광 속에 들어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루카 24,26)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부활하셨고 이제 우리 곁에 살아계신다. 주님의 선택과 결단 덕분에 우리는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2022년 7월 31일(다해) 연중 제18주일 원주주보 들빛 5면, 김경랑 귀임마리아 수녀(복음화사목국 성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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