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마태오 복음 5장 3절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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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11-05 | 조회수2,552 | 추천수0 | 신고 |
마태오가 강조하는 "의로움"(디카이오쉬네)은 하느님의 뜻을 행함이다. (神意實行 ; 3,15; 5,6.10.20; 6,1.33; 21,32). 그러니까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마태오 시대 박해상을 드러내는 말씀들 참조 : "이 도시에서 여러분을 박해하거든 다른 도시로 피하시오. 진실이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인자가 올 때까지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도시들 (전도)를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10,23).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예언자들과 현자들과 율사들을 보낸다. 너희는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형에 처하며, 그 중에는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도시에서 도시로 (뒤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23,34). - 200주년 신약성경 주해서에서 발췌-
그러니까 6절에서는 "의로움" 곧,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싶은 열망과 갈망이 가득한 사람들은 복되다(행복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10절에서의 "의로움"은 곧, 하느님 뜻대로 살려다 보면 박해를 받게 될 것인데 그렇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면서 박해를 받는 것 또한 복되다(행복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오 5장 3절 : 200주년 신약성경의 번역은 이렇습니다. "복되어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영"과 "가난한 이들"은 매우 흔한 낱말이다. 그러나 구약· 신약을 통틀어 두 낱말이 함께 붙어 사용된 경우는 없다. 오직 마태 5,3에만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러니 그 뜻이 자못 불분명할 밖에. 그러던 차에 1947년부터 발견된 쿰란 문헌에 보면 "영의 가난한 이들"이란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 (1GM14,7; 1GH14,3), 예수 시대 쿰란 수도자들이 그렇게 자처했다. "영의 가난한 이들"의 반대가 완고한 마음인 점으로 미루어 (1GM 14,7) "영의 가난한 이들"은 겸손한 이들이라 하겠다.
쿰란의 수도자들은 빈자의 영성에 심취했던 까닭에 "영의 가난한 이들" 말고도 "은총의 가난한 이들"(1Gㅐ 5,22), "당신 구원의 가난한 이들"(1GM 11,9), 또는 "가난한 이들" (4QpPs37)로 자처하기도 했다.
다른 해설 두 가지 : 영으로 가난한 이란 실제로는 사유재산을 소유하더라도 물욕을 버린 사람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가톨릭 수도원에서 즐겨 내세우는 또 한 가지 설로서, 사유 재산을 포기하고 청빈서원을 발한 수도자야말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 (영으로 가난함)은 영의 부추김을 받아 자발적으로 가난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청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난을 체험하고 감수한다기보다 가난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기는 후련한 경지를 말합니다. …"(神과 聖書 120). 이는 예수회의 영신수련 또는 불가의 선 수행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일지언정, 아무래도 마태오 5,3의 참뜻과는 거리가 먼 발상이다.
끝으로 우리말 번역 문제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공동번역)는 잘못된 번역이다. ①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음이"가 없고 그 대신 "영으로"라고 되어 있다. ② 원문에는 "행복 하다"가 맨 앞에 나온다. ③ 공동번역 문장은 우리 어감에 거슬린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할 지라도 마음만은 풍족하게 살아야지, 마음조차 찌들면 어쩌나.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발췌 -
아마도 제 생각에는 ...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시고 양순하시니 ...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겸손하고 양순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행복하지 않겠는지요? 복음의 핵심, 또는 성경의 핵심은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라고 볼 때 행복한 사람의 가장 첫째 조건은 바로 예수님의 겸손하시고 양순하신 마음을 닮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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