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맛들이기] 유다인들의 믿음과 삶의 중심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신·구약 전체에서 다른 어떤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들에게 예루살렘은 늘 기대와 설렘을 주는 도시지만,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은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계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구약의 다윗 임금 때부터였습니다. 다윗은 이곳을 점령한 후 남쪽 지파(유다와 베냐민)와 북쪽 지파(나머지 열 지파)를 통합하기 위해서 수도로 정했습니다(2사무 5,6-10 참조).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 가장 먼저 ‘계약의 궤’를 옮겨왔습니다(2사무 6,1-19 참조).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형태의 예배와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계약의 궤가 모셔진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잘것없던 예루살렘은 시리아 ·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정치적·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영광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하느님과 예루살렘 사이의 연관성을 튼튼하게 한 솔로몬 시대였습니다(1열왕 6; 8; 2역대 3-7 참조). 하지만 솔로몬이 죽은 뒤 통일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예루살렘은 남북으로 갈라져 남 유다의 수도로 전락하였습니다(기원전 930년 전후). 예루살렘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 철저하게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유다인들의 삶과 믿음의 중심지로 남아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시선을 두었으며, 회당 또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건설되었습니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로 시작하는 시편 137편에서 우리는 유배자들이 품었던, 그들의 가장 큰 위로이며 기쁨인(시편 137,6 참조) 예루살렘을 향한 간절한 향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헤로데 임금에 의해 좀 더 화려한 형태로 복구되었습니다(기원전 20-19년). 예수님 시대에도 예루살렘은 유다인들의 믿음과 예배의 중심지로서 온전히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예루살렘 도시민들의 삶은 전적으로 성전 사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유다인들의 자치기구와 성경 공부를 위한 명문 학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교 율법의 불변적 가치, 참을 수 없는 로마제국의 지배, 종교적·사회적 바탕의 흔들림, 권리와 삶에 대한 모순적 관념 등에 고무되어 마침내 로마 지배자들에 맞서 독립전쟁(기원후 66-74년)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겨우 남은 것이 오늘날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성벽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고 수난을 받으시고 또 부활하신 곳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은 신약성경 저자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닌 곳이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성령 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된 곳이며, 복음이 처음으로 선포되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던 출발지가 되었습니다(루카 24,47; 사도 1,8 참조).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2022년 8월 21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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