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명사 ‘자비’ [엘레오스] (ἔλεος) 마태 9,13; 12,7; 23,23에는 사람의 행위로서 “자비”가 언급되는데,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충돌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자비를 언급하시며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셨고, 바리사이들에게는 그것이 없음을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일에 분노했습니다(마태 9,10-13 참조). 이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호세 6,6을 인용하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레위기 정결례 규정에 따라 불결하다는 이들과 상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종교적으로 부정의 원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대하시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는 소외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때 본뜻을 갖게 됩니다. 제사는 사람이 하느님께 올리는 경신례(敬神禮)고, 자비는 불쌍한 이들을 향한 선행입니다. 이러한 선행의 자비를 무시하는 제사는 무의미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자비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비에는 보다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자비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상황에 세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며, 이웃에게 무감각해지고 눈멀게 만드는 자기중심적 태도를 극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당신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어 먹었다고 비난하자, 이에 반박하셨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누군가를 율법으로 고발하기 전에, 그에게 어떻게 대하길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아는 게 필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단지 계명 실천을 위한 율법적 태도가 아니라, 타인의 불행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접근할 때 가능해집니다. [2022년 8월 21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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