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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로마로 호송되는 여정의 도시들 - 몰타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9-05 조회수3,744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로마로 호송되는 여정의 도시들 (3) 몰타섬

 

 

- 남쪽 하늘에서 찍은 몰타 섬 전경(BiblePlace.com)

 

 

아드리아해에서 표류하다가 어느 해변 가까이에서 배가 좌초했으나 모두 살아나 뭍으로 나온 바오로 일행. 이들이 도착한 곳은 몰타섬이었습니다(사도 28,1). 오늘날 흔히 몰타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몰타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群島)입니다. 가장 큰 섬이 몰타인데, 몰타섬 북동쪽에는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따 성 바오로만이라고 부르는 만이 있고, 그 바로 앞에는 성 바오로 섬이라고 부르는 작은 섬도 있습니다. 바로 이 근처에서 바오로 일행이 탄 알렉산드리아 배가 좌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크기가 서울의 절반쯤 되는 몰타섬은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5900년 무렵부터 주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바다를 통해 세력을 넓히려는 나라들에는 중요한 전초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몰타는 기원전 800~700년쯤에는 강력한 해양 국가인 페니키아에 점령당했고 이후에는 카르타고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다시 점령당했다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로마 제국에 점령당합니다. 바오로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원주민들뿐 아니라 그리스인들도 많이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 소장된 뱀에 물린 바오로 그림(BiblePlace.com)

 

 

원주민들의 환대

 

원주민들은 바오로 일행을 각별하게 환대합니다. 비가 내리는 데다 날씨까지 추워서 그들은 불을 피워놓고 일행을 맞이합니다(사도 28,2). 섬사람들이어서 난파된 배들을 많이 보았을 테고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따뜻이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바오로가 땔감 한 다발을 집어서 불 속에 넣자 독사 한 마리가 땔감 속에서 튀어나와 바오로의 손에 달라붙은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원주민들은 바오로가 살인을 저지르는 나쁜 짓을 했다고 여깁니다. 비록 바다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정의의 여신이 묵과하지 않고 독사를 보내어 대가를 치르게 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오로가 곧 독사의 독이 퍼져 온몸이 부어오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뱀을 불 속에 털어버린 바오로는 시간이 흘러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이번에는 바오로를 신이라고 여깁니다(사도 28,3-6).

 

사실 바오로가 신으로 떠받들어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한 1차 선교여행 때 리스트라에서 태생 불구를 고쳐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본 군중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 여긴 것입니다(사도 14,8-12). 리스트라에서는 군중이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제물을 바치려고 하고 두 사람이 이를 말리려고 군중 속으로 뛰어드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만(사도 14,13-14), 몰타에서는 군중이 바오로를 신으로 여겼다는 것 외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또 원주민들이 그렇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바오로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사도행전 저자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 몰타섬 발레타에 있는 바오로 난파 기념 교회(좌), 바오로 난파 기념교회의 바오로 상(우) (BiblePlace.com)

 

 

석 달을 머물며 겨울을 나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몰타섬에서 있었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합니다. 섬의 수령인 푸블리우스가 바오로 일행을 손님으로 맞아 사흘 동안 극진히 대접해 주었는데 마침 그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는 것을 보고 바오로가 가서 기도와 안수로 그를 고쳐준 것입니다. 그러자 섬의 다른 병자들도 바오로에게 왔고, 바오로는 그들도 고쳐줍니다. 이로 인해 섬사람들은 바오로 일행에게 크게 경의를 표했고, 바오로 일행이 배를 타고 떠날 때는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주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몰타섬에서 석 달을 지내면서 겨울을 난 바오로 일행은 봄이 되자 다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몰타를 떠나 로마로 향합니다. 이 배는 몰타섬 앞에서 좌초된 그 알렉산드리아 배가 아니라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져 있는 다른 알렉산드리아 배였습니다(사도 28,7-11).

 

디오스쿠로이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로 흔히 ‘쌍둥이 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집트에서는 선원들의 수호신으로 널리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바오로 일행이 소아시아 남부 미라에서 바꿔 탄 알렉산드리아 배가(사도 27,7) 아드리아해에서 표류하다가 결국 좌초했기 때문에, 백인대장은 이번에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선원들의 수호신인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진 알렉산드리아 배를 선택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바오로가 몰타섬에서 3개월이나 지내면서 많은 병자를 고쳐준 일화를 전하면서도 바오로가 이 섬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3차에 걸친 선교여행 때와 달리 지금 바오로는 로마로 호송되는 수인의 몸이어서 복음을 직접 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몰타섬의 원주민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나 예수님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어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오로가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을 보고 아테네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관해 설파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사도 17, 22-31 참조),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셋째, 바오로는 몰타에서도 여건이 닿는 대로 말씀을 전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실 푸블리우스의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병자를 고쳐준 치유 행위 자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저자가 바오로의 복음 선포 행위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은 바오로의 최종 목적지인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학자들은 보기도 합니다.

 

- 몰타섬 바오로만에 있는 바오로의 난파를 기념해 14세기에 세워진 성모 통고 성당(좌), 성모 통고 성당의 성 푸블리우스 상(우) (BiblePlace.com)

 


바오로의 자취가 묻어나는 몰타

 

바오로가 탄 배가 좌초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성 바오로만을 따라 작은 도시가 형성돼 있는데 도시 이름도 똑같이 ‘성 바오로만’이라고 부릅니다. 이 도시에는 바오로가 탄 배가 난파된 것을 기념해 세운 ‘성 바오로 난파 교회’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놓고 바오로 일행을 맞아주었다고 해서 ‘성 바오로 화톳불 교회’라고도 부릅니다. 이 교회는 원래 14세기에 지어졌지만, 원래 건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을 맞아 파괴된 후 새로 지은 것입니다.

 

또 성 바오로 난파 교회에서 2㎞쯤 떨어진 곳에는 ‘성 바오로 밀키’(San Pawl Milqi)라고 부르는 작은 경당이 있습니다. 섬 수령 푸블리우스가 바오로 일행을 극진히 환대한 곳임을 기념해서 지어진 경당입니다. 푸블리우스는 1634년에 성인으로 선포되었는데 아마 이를 기념해서 지은 경당이 아닐까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푸블리우스는 바오로가 자기 아버지를 낫게 해준 것을 보고 신자가 됩니다. 또 다른 몇몇 전승에 따르면 푸블리우스는 2세기 초에 순교했다고 합니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일 수 있지만, 푸블리우스라는 이름의 아테네 주교가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밖에 몰타 공화국의 수도 발레타에는 바오로의 몰타 표착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발레타에 있는 성당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당에 속하는데 16세기 말에 세워져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닙니다.

 

역사에서는 ‘몰타 기사회’로 널리 알려진 몰타는 인구 50만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이지만,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성경의 도시이며 주민의 98%가 신자인 가톨릭 국가이기도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9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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