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금송아지 배교 사건 이집트의 시나이산에 오르면, ‘이곳이 바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구나.’ 하는 현장감이 밀려옵니다. 물론 이 산이 성경의 시나이(호렙)산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감동은 여전합니다. 새벽 한 시에 일어나 작은 전등불에 의지해 네다섯 시간 등정하여 정상에 서면, 끝없이 연결된 산맥의 아름다움에 압도됩니다. 아찔한 생각도 듭니다. 까마득한 절벽이 곳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눈먼 사람처럼 올라왔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탈출 24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산 아래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며 십계명과 여러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분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금송아지 상을 만드는 죄를 짓습니다(탈출 32장). ‘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십계명을 어긴 셈인데, 십계명에는 주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규정이 서두에 나옵니다(탈출 20,4). 그런데도 그새 송아지 상을 만들다니 어찌 된 영문일까요?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백성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뒤(24,1-11) 모세는 시나이산 위로 올라가 사십 일 동안 머뭅니다(18절).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던(20,19) 예언자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백성은 불안해진 마음에 모세의 형 아론에게 몰려갑니다. 당시 백성이 품었던 생각은 그들이 아론에게 한 청에서 엿보입니다: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32,1). 곧 그네들이 필요로 했던 건 하느님의 현존을 눈으로 확인시켜줄 증거였던 것이지요. 모세가 있을 때는 그가 하느님을 대변해주었지만, 그가 사라지니 자기들을 하느님과 연결해줄 매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는 백성의 청을 듣고 아론이 한 일도 의문입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금붙이를 모아 송아지 상을 주조합니다. 그걸 보고 백성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라고 외치고, 아론은 제단을 쌓아 주님을 위한 축제를 벌이자고 선언합니다(32,4-5). 아론이 송아지를 신상으로 만든 건 고대 근동의 신관과 관계있습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소, 특히 뿔 달린 황소를 신이나 군주 또는 힘의 상징으로 보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일례로, 풍우 신으로 알려진 가나안의 바알은 황소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됩니다. 이집트인들은 황소 형상을 한 ‘아피스’를 프타 신의 현현(顯現)으로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자마자 송아지 상을 만든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집트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것일 터이니까요. 이 사건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믿음이 약한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 아무리 잘못된 일이라도 다수의 사람이 하면, 쉽게 합리화하며 따라 하는 모습도 돌아보게 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9월 11일(다해)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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