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자비, misericordia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마태 5,7) 자비는 라틴어로 [미세리꼬르디아](misericordia)입니다. 이 단어는 ‘마음’(cor)과 ‘가난한 이들’(miseri)이 합쳐진 것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가난은 경제적 측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은 다양한 방면과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자비는 단지 강자가 약자를 불쌍히 여겨 선심을 보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비를 베푸는 이는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고 이해타산 없이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자비로운 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이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됩니다. 사실 인간의 자비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로움은 스스로 도울 능력이 없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향해 드러나며, 가난한 이들뿐만 아니라 죄인에게도 용서와 구원을 선물해주시는 자비입니다(마태 18,27; 로마 11,30; 1티모 1,15-16 참조). 다섯 번째 행복선언은 하느님의 행위와 같은 어원을 갖는 인간의 행동을 가리키는 유일한 내용입니다. 이는 이웃을 향한 인간의 자비로움이 결국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움과 연관됨을 보여줍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자비를 베풀어주는 이에게 의존하는 모습은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해야만 하는 인간의 근원적 나약함을 반영해줍니다. 또한 이 행복선언은 첫 번째 행복선언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마음으로 가난한 이’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하는 이들입니다. 실제로 이 같은 의존은 죄인인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로움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이들의 행복 선언은 우리를 향한 이웃의 의존이라는 주제로 확장됩니다. 만일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의존하는 궁핍한 형제들에게도 둔해질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에 대한 하느님의 결정적인 도우심을 바란다면, 먼저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구체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실천은 마음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진지하고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 역시 경제적이고 육체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문화적으로, 사회(관계)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곧 여러 형태와 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 대한 책임입니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는 사람은 하느님 무상의 자비로움에 의존하는 겸손한 신앙인이 됩니다. [2022년 9월 11일(다해)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