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 :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정체(마태 14장) 마태오 복음 14장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을 되살아난 세례자 요한으로 여깁니다.(1-2절) 앞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 비유 설교’(13,1-53)를 마치신 다음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정체와 능력에 의문을 가집니다.(13,54-58) 믿는 이들에게도, 또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말씀과 행동으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며 군중을 몰고 다니시던 예수님의 정체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시작인 1장 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으로 선포하고(1,23) 마지막인 28장 부활 이야기에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라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 약속으로 복음서를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수미 상관(inclusio) 방식은 ‘하느님의 지속적 현존’으로서의 예수님의 정체를 강조하며 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전체 마태오 복음 중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14장은 예수님의 세 가지 중요한 사건, 곧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13-21절),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22-33절), 그리고 겐네사렛에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34-36절)를 연달아 보도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동작(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찬미를 드리시며’, ‘떼어’, ‘주셨다’)을 나타내는 네 가지 동사는 성찬 제정 본문에서도 반복되면서(26,26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 이야기가 성찬 제정 텍스트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사제를 통해서 거행되는 미사 안에서도 똑같이 재현되며,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게 합니다. 전통적으로 성경에서 배는 교회를, 바다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항해하는 배로 자주 묘사되며, 바다 위의 거친 풍랑과 파도는 세상을 항해하며 교회가 겪는 갖가지 곤경과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에서 물 위를 걷고 자연을 통제하며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행위인데(욥 9,8; 시편 77,20; 107,23-30 참고) 우리는 구약의 하느님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늦은 새벽에 배 위에서 풍파와 씨름하며 힘겨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오시며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14,27) 특히 ‘나다’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는 당신이 앞서 오천 명을 먹이신 생명의 주님, 그들의 스승님이심을 확인시켜 주며, 나아가 구약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에 하셨던 ‘하느님의 자기 계시 표현’인 ‘에고 에이미’(“나는 있는 나다.”, 탈출 3,14)를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밝혀주며,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앞서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8,23-27)에서처럼 사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손쉽게 자연을 제어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8,26 참조), 마태오 복음 사가는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이야기(14,28-31)를 추가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믿음 또한 강조합니다. “오너라.”(29절)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물 위를 걷게 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두려워져 물에 빠져서 예수님께 소리칩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30절) 이에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31절)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믿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심하는 약한 믿음’이 아닌 ‘의심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장면의 마지막은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절) 참으로 신기하게도 시련과 고통의 사건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어지는 겐네사렛에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치유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직전에도 예수님은 군중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 있는 아픈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는데(14절), 예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치유 기적은 인간에게 있어서 분명 놀라운 구원 체험임에 틀림없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사건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치유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을 재확인합니다. 마태오 복음 14장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시는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가난과 질병, 고통과 예기치 못한 어려움으로 만만찮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허덕이며 아파하는 우리의 삶이지만, 그러한 시련 속에서 우리는 우리 곁에 함께 머물러 계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단 한 가지, 오직 주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일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14,31) [월간빛, 2022년 9월호,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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