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톺아보기] 시편 51편, 용서와 새 창조의 기도 야구에서 투수의 구종은 다양하지만 크게 ‘직구’와 ‘변화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직구는 매우 빠르게 던지는 구종인 반면 변화구는 공의 회전 때문에 날아가는 도중 움직이거나 휘어져 타자가 공을 치기 어렵게 만듭니다. 야구에서 파생된 ‘돌직구를 날리다’는 말은 툭 던지는 말이 마치 돌처럼 단단하고 묵직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대화할 때 완곡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서는 ‘돌직구’ 의사 표현을 더 선호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직접적 표현을 어려워하여 ‘변화구’를 더 편안히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밧 세바 사건으로 나탄 예언자의 날카로운 질책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단말마의 비명처럼 내지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 12,13)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식한 다윗이 드린 기도가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51편의 머리말은 ‘그가 밧 세바와 정을 통한 뒤 예언자 나탄이 그에게 왔을 때’라고 이 시편의 정확한 탄생배경을 알려줍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거론되는 두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골리앗이고 다른 하나는 밧 세바입니다. 두 사람 모두 다윗의 삶에 큰 도전이었습니다. 밧 세바와의 사건은 다윗의 신앙의 삶에 남겨진 얼룩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죄와 은총으로 얽혀진 삶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51편은 높은 수준의 성찰과 고백을 담고 있는 시편으로서 교회에서 자주 듣는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편의 라틴어 첫 구절을 따서 ‘미세레레(miserere)’ 시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뜻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이 시편은 카시오도루스(+580)에게서 최초로 발견된 교회의 일곱 참회 시편(6; 32; 38; 51; 102; 130; 143)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51편은 많은 시편 가운데 23편(주님은 나의 목자)과 더불어 가장 많이 고백되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사실 51편의 머리말은 시편 배열에서 큰 전환점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50편의 저자는 아삽인데 51편부터는 다윗이 저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모두 열두 편으로 구성 되어 있는 아삽의 시편은 시편 50편, 그리고 시편 73-83편으로 다윗 시편의 내부 틀을 형성합니다. 시편 51-72편은 다윗의 시편들이고 그 외부 틀은 코라 자손의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42-49편, 84-85편, 87-88편) 아삽의 시편에서 다윗 시편으로의 변화는 머리말 외에도 시편 51편의 2절에 나타나는 역사적 배경에서도 강조됩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죄를 깊고 처절하게 참회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세 가지 동의어로 ‘죄’를 표현합니다. 곧 구약에서 ‘죄’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이 총동원됩니다. 그 첫 번째는 ‘페샤’입니다. 이것은 반역이라는 의미에 가까운 단어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죄를 가리킵니다. 두 번째 죄악은 ‘아온’으로 남에게 해악을 끼치는 비틀어진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웃에게 행한 폭력과 살인 등 온갖 악행을 뜻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죄를 표현한 단어는 ‘하타’인데, 이 단어는 옳은 길을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선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방향 상실을 뜻합니다. 세 가지 표현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한 다윗은 용서를 청할 때에도 세 개의 동사를 사용합니다. ‘지워주소서’, ‘씻어 주소서’, ‘깨끗이 하소서’가 그러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완전한 용서를 바라는 다윗의 간청이 이 동사를 통해 강렬히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51, 3-4) 아울러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인이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 자연스러웠음을 인정하고 동시에 자신의 도덕적 무기력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은 자신의 죄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와 더불어 새 창조를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의 구조는 ‘용서와 새 창조의 기도’를 잘 드러내줍니다. A 머리말(51,1-2) B 시인의 고백: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51,3-6) C 죄의 용서를 위한 간청(51,7-11) D 새 창조의 간청(5,12-14) C' 죄에서 구원을 간청(51,15-17) B' 시인의 고백: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51,18-19) A'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기도(51,20-21) 51편의 중심단락(D)은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입니다. 이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달라’는 시인의 요청이 의미심장합니다. 창조란 본래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입니다. 망가진 것을 복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간청은 자신에게는 깨끗한 마음이 없었음과 그것은 하느님께서 해 주셔야만 가질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덧붙여 다윗은 한가지를 더 간청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거룩한 영을 거두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거룩한 영이 사람에게서 떠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울에게서 하느님의 영이 떠나자 그가 악령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런 사울을 위해 자신이 수금을 타며 위로한 경험도 있습니다. 다윗은 죄로 인해 주님의 거룩한 영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느님의 영이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간절히 청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신다면 자신이 악인들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지식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참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용서받은 행복한 죄인’ 다윗은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진심을 담아 우리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월간빛, 2022년 9월호,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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