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코헬렛 코헬렛은 히브리어 ‘카할’에서 파생된 것으로 집회, 회중, 백성 공동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칠십인역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에클레시아스테스(Ἐκκλησιαστής, 회중, 교회의 구성원)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볼 때 코헬렛은 ‘모임 또는 집회의 의장’, ‘연사(演士)’라는 뜻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과거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코헬렛의 내용을 보면 전도나 선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코헬렛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음역해서 코헬렛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코헬렛은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1,1)라고 시작합니다.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임금이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는 자신을 솔로몬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헬렛 본문에서 솔로몬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후대에 사용되던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고, 전통 신학인 인과응보 사상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솔로몬을 이 책의 저자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코헬렛은 머리말-본문-맺음말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머리말은 1장 1-11절까지의 말씀으로 세대의 변화, 태양의 뜨고 짐,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감 등 사물의 순환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이어지는데 본문은 1장 12절-6장, 7장-12장 8절까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먼저 전반부에는 코헬렛의 자기반성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하고, 또 많은 것들을 이뤘다고 할지라도 결국 완벽하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코헬렛은 인간의 모든 현실이 지니는 부정적인 면과 한계, 그리고 이것들의 상대성을 인식하면서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커다란 수고로움이 뒤따르고, 그 수고로움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마저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갈등과 번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헬렛은 이러한 번민 속에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후반부에서 코헬렛은 인간이 지닌 지혜는 한계가 있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이 주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느님이 허락해주시는 것 안에서 매일을 소중히 살아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맺음말은 12장 9-14절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코헬렛은 끝을 맺습니다. “허무로다, 허무!”(1,2) 코헬렛에서 중요 개념으로 등장하는 허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총 73번 나오는데 코헬렛에만 38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헤벨을 번역한 것으로 입김, 숨 등과 같이 찰나의 것, 금방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헬렛은 ‘허무’를 38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염세주의적, 또는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입김, 숨은 한 사람이 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따라서 코헬렛이 표현하는 무상함은 그것들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에 집착하려는 인간들의 태도에 대한 것입니다. 코헬렛이 안고 있는 숙제는 욥기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가 지켜지지 않는 삶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욥기에서는 무죄한 이가 겪게 되는 고통과 인과응보, 상선벌악이라는 전통적 신학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딜레마라면, 코헬렛은 이와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려보았고 뛰어난 지혜도 깨달았지만 누구도 극복할 수 없음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마주하게 된 딜레마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내가 수고했던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를 인간의 지혜와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허무였습니다. 특히 코헬렛이 작성된 시점인 BC 3세기는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가득찼던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며 불완전한 가치관으로 더욱 더 혼란을 겪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궁극적인 자유, 구원, 완전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커져 갔던 시기입니다. 비관적이며 냉소적인 듯 보이는 코헬렛의 태도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졌던 태도를 대변합니다. 코헬렛은 이를 피해가지 않습니다. 삶을 둘러싼 부정적인 측면들, 고통, 죽음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코헬렛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인간의 계획만으로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순명하는 것, 하느님을 믿고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몫이라고 코헬렛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고, 삶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애썼던 코헬렛은 결국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한계성, 삶에 대한 집착 그리고 삶의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신뢰하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10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