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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성경 맛들이기: 마르코 복음의 신학을 통한 이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17 조회수1,525 추천수0

[성경 맛들이기] 마르코 복음의 신학을 통한 이해

 

 

마르코 복음에서 줄곧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은 ‘고난받는 메시아’ 개념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와서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유다 사회는 물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분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신앙인에게 제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정보 취득이나 계시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죽음으로 순종을 보여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루카·마태오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탄생(마태 1,18-25; 루카 2,1-7)과 유년 시절(루카 2,41-52 참조)에 대해 침묵합니다.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선재성(요한 1,1-18 참조)에 대해서도 말이 없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단순히 지상의 삶을 살다 간 인간으로서의 하느님을 묘사하는 데 주력합니다. 그렇기에 탄생과 유년 시절의 장면을 그릴 이유도 없고, 거룩한 태초의 하느님으로서 웅장하게 묘사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한 나약한 인간을 보여줄 뿐입니다. 예수님은 수난의 잔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인간 세상이 원하고 종교 지도자들이 갈망하는 기존 사상적 구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고 참혹한 인간 소외의 자리에도 하느님의 현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르코 복음의 주장이자 특징입니다.

 

기존의 지식과 신앙이 아무리 투철하고 완벽해도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 아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모자라고 불완전하다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입니다.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식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넘어서는 무조건적 의탁에서 가능합니다. 믿음은 지식의 채움이 아니라 지식을 넘어서서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투신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의지적 포기가 신앙의 길이고, 그것이 하느님 아들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고난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인간이 본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고, 그분을 제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어떤 의미로는 사회적 신분과 위신, 계급과 권력의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해방된 참된 자아의 회복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참된 자아를 회복한다는 것은 입던 옷을 벗어 던지는 결단을 통해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즉 옷을 벗는 행위는 기존의 삶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새 옷을 입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난받는 예수님으로서 나 자신이 되는 것, 이것이 마르코 복음을 읽는 목표이자 이유입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2022년 10월 16일(다해) 연중 제29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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