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계약 궤의 행방 계약 궤는 십계명을 보관하던 함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한 번쯤 성전에 모셔져 있던 계약 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망하던 즈음 자취를 감춘 뒤, 전설 같은 이야기만 키워온 주인공입니다. 계약 궤는 “하느님의 궤”(2사무 6,12), “증언 궤”(탈출 25,22)라는 이름으로도 칭해집니다. 증언 궤라는 호칭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증명하는 십계명 판(1열왕 8,21) 때문에 붙은 것입니다. 계약 궤 위에는 커룹이 장식되었는데, 그 얼굴은 속죄판, 곧 계약 궤의 덮개를 향하고 날개로는 속죄판을 덮는 형상이었습니다. 원조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그 입구를 지킨 커룹들(창세 3,24)이 계약 궤에서도 속인들이 십계명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막는 구실을 한 것입니다. 커룹은 또한 주님의 왕좌를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종종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으로 묘사됩니다(탈출 25,22; 1사무 4,4). 그렇다면, 커룹 밑의 계약 궤도 주님 왕좌의 일부(발판)에 해당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 판을 계약 궤에 담아 성전에 보관한 건 고대근동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고대근동 사람들은 나라 간에 체결한 계약이나 법적으로 중요한 문서를 신상의 발 아래 두곤 하였습니다(1사무 10,25). 그 내용이 잘 지켜지도록 신들이 감독해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이스라엘은 신상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주님과 맺은 계약의 증서인 십계명을 주님 왕좌의 발판에 해당하는 계약 궤에 둔 것입니다. 그러다 유다 왕국이 망할 즈음 종적이 묘연해진 뒤, 전설 같은 이야기만 남게 됩니다. 탈무드에서는 유다 임금 요시야가 감추었다고 전하고(요마 53ㄴ—54ㄱ), 2마카 2,5에서는 예레미야가 느보 산의 한 동굴에 숨겼다고 전합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는 자기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요. 모두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약 궤의 실종이 이스라엘 신앙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는 회복의 시대에 계약 궤가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예레 3,16-17). 그때는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주님의 옥좌”라 일컬어지고, 민족들은 주님의 이름을 찾아 그리로 모여들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빌론 유배 뒤 제2성전에서는 기초석(foundation stone)이 계약 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요마 54ㄴ). 기초석은 주님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는 바위인데, 지금은 그 위로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사진).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계약 궤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곳은 묵시 11,19입니다. 2마카 2,4-8에 따르면 계약 궤는 하느님께서 백성을 다시 모아 자비를 보이실 때까지 숨겨진 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묵시록에 언급되었으니,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러모아 새 이스라엘을 이루심을 알리는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뒤에는 주님의 왕좌로서 그분의 현존을 상징해주던 계약 궤가 완전히 의미를 잃게 되니, 그 행방은 이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0월 30일(다해) 연중 제31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