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신앙인의 모습 (2) 변화와 쇄신(로마 12,1-8,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셨다. 따라서 신앙생활도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 ‘나만’이라는 식의 소위 천로역정적인 태도는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사도 바오로는 교회는 항상 새롭게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이 세대에 적응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것이다: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5절). 그리스도를 뺀 조직, 그리스도의 뜻을 저버린 조직과 관리를 지향하는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교회의 지체인 각 사람의 지식과 능력과 모든 소유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6-8절). 그리스도인 모두 똑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지만 각자의 기능이나 역할은 다르다. 교회가 이 세상과 달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시가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희망 속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모습이 곧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모두 그분의 지체라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바오로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2절)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각자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그것에 따라 계층을 형성하고 자리 다툼을 하는 공동체를 향하여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16절)라고 충고한다. 교회는 마땅히 변화하고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와 쇄신의 힘은 약화되고 오히려 이 세상 풍조에 동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세상 것에 순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항상 초점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내가 공동체를 향한 마음과 열정이 정말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믿음에 의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성찰이 없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우리는 성당에 나와서 성가를 부를 때 기쁘고, 기도할 때 힘이 생기고, 성경 말씀에서 위로와 생기를 얻으며, 신자들과의 친교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성가와 기도, 성경과 친교는 더없이 은혜롭고 행복한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밥을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처럼, 매일 성당에 나와도 질리지 않고 은혜롭고 즐거움으로 가득 찬 그런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 11월 20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원주주보 들빛 3면,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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