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신앙인의 모습 (4) ‘가시’의 의미(2코린 12,1-10) 바오로는 자신이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지 행동으로 옮기는 투사형의 사람이지만, 달변가인 아폴로와는 달리 눌변가였다(2코린 11,6). 또한 바오로는 지중해 각지에서 선교할 무렵에 지병을 앓고 있었다. 바오로의 적대자들은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직접 대하면 그는 몸이 약하고 말도 보잘 것 없다”고 혹평하였다(2코린 10,10). 바오로는 7-10절에서 자신의 지병에 대해서 신학적 평가를 내린다.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7절). 하느님께서 바오로가 엄청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교만해질세라 지병을 주셨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하느님께 지병(가시)을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청하였다(8절).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다(9절).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힘이 약질 바오로에게 작용해서 그로 하여금 사도직을 힘차게 수행하도록 해 주신다는 뜻이다. 곧 사도 바오로의 지병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힘을 드러내는 현주소라는 말이다. 바오로는 지병을 없애기 위하여 여러 번 기도했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대답을 들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9ㄱ절). 바오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여러 번 기도했음에도 가시가 없어지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오로로 하여금 자만하지 못하게 하려는 주님의 뜻이었다. 바오로는 자만할 만한 많은 조건을 갖춘 사도였다. 그는 유다인으로 베냐민 지파 출신이고, 바리사이로 당시 세계 최고의 석학에게서 율법을 배웠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며, 신학자요 사목자요 선교사로서 다양한 신앙체험 신비체험을 한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참으로 주님의 은총을 넉넉히 받은 사도였다. 이러한 엄청난 은총을 받게 되면 보통은 교만에 빠지게 되는데 바오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끊임없이 찌르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은총’이 내게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교훈을 얻게 된다. 마침내 바오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 가시를 받아들여 그것을 지니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곧 이 가시와 화해하고 친구가 된 것이다. 바오로는 가시를 지닌 채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9ㄴ절)라고 고백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가시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 가시가 질병일 수도 열등감일 수도 좌절일 수도 죄책감일 수도 있다. 그 가시를 두고 원망하거나 생을 포기한다면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신앙인은 바오로처럼 그리스도의 은총의 빛에서 이 가시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가시와 화해하고 친구가 되면 이 가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이 가시를 이기는 길이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는 직역하면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고 있다”이다. 곧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해서 은총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12월 11일(가해)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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