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신앙인의 모습 (5) 지식과 사랑(1코린 8장) 바오로는 8,1-13에서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질의서를 통하여 질문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문제를 다룬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코린토 신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교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좋은지 먹어서는 안 되는지의 문제였다. 당시 코린토 사회에서 우상 제물을 먹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밖에서 먹는 음식 대부분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코린토 신자들 중 이교도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제물을 먹을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세상에 우상이란 없고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계시다는 지식을 소유한 이들은 우상 제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먹었다. 바오로는 일단 세상에 우상이란 없으니까 우상 제물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위 대범한 신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바오로는 대범한 신자들의 지식이 교만으로 빠짐으로써 참으로 알아야 할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바오로는 8,2에서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지식이 다른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바오로가 6절에서 언급한 그리스도교의 전통 가르침에 대한 지식을 누구나 가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러한 지식을 갖지 못한 이들은 우상 제물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다. 우상 제물을 먹은 이들은 신앙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바오로는 코린토1서 8장에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문제를 다루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소심한 신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을 앞세워 거리낌 없이 우상 제물을 먹는 일에 자유로웠던 소위 대범한 신자들을 향해 충고한다.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8,9). 내 지식과 믿음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교회 신자들 사이에 싸움이 잦고 서로 원수가 되고 독선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자기 나름대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곧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신앙적으로 못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남을 판단한다. 교회에서 아무리 이웃사랑을 강조해도 소용이 없는 것은 바로 저들이 지닌 지식 때문이다. 바오로는 이런 이들을 향해 약한 신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처신하라고 충고한다. 그리스도인의 지식, 자유, 신앙은 매우 고귀한 것이지만 지식이나 신앙의 정도는 다 다르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사랑을 먼저 앞세우라고 한다. 내 지식, 자유, 신앙이 이론상으로는 아무리 옳다고 해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약한 형제의 양심에 상처를 준다면 유보해야 한다. 약한 사람이 그것으로 인하여 넘어진다면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식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타인을 배려하게 되고 이로써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로 바로 서게 된다. 참 이웃을 아는 사람은 그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2022년 12월 18일(가해) 대림 제4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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