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발라암의 예언 옛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접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진을 친 곳은 요르단강 건너편 가나안을 마주보는 모압 벌판이었습니다. 사해의 북동쪽 경계 부근에 자리한 이곳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들은 민수 22-36장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22―24장은 이방 예언자 발라암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모압 영토에 들어가지 않고 경계에 자리해 있었습니다(민수 22,5). 하지만 백성의 수가 많은 데다 주변의 목초지를 축내 모압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22,3-4). 2열왕 3,4에 “모압 임금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이라 소개될 만큼 모압은 목축하던 나라였기에 더 위협적으로 느낀 듯합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모압 벌판에 도착하기 앞서 “호르마”라는 곳을 점령하고, 아모리 임금 시혼을 꺾은 터였습니다(민수 21장). 이런 기세에 놀란 모압 임금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해 힘을 빼려고 발라암이라는 자를 불러오게 합니다. 하지만 발라암은 오히려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모압의 몰락을 예견합니다. 곧 그는 이방인임에도 하느님의 예언자처럼 행동하였고, 그 결과도 꽤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발라암을 “점쟁이”(여호 13,22)로 보거나 ‘불의한 자’(2베드 2,15; 유다 11절; 묵시 2,14 등)로 질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는 언뜻 모순돼 보일 수 있지만, 민수 25장에 이어지는 ‘프오르’ 사건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어찌됐든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느라 발락의 청을 들어주지 못했고, 그래서 발락이 약속한 거액의 복채(민수 22,17)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모압 여인들을 보내 프오르에서 이스라엘을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로 끌어들임으로써 발락이 원하던 바를 이루려 한 듯합니다. 민수 31,16에서 프오르 사건이 발라암의 사주 때문이었다고 밝힙니다. 이 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으니 발라암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 된 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발라암도 메시아와 관련된 예언을 남깁니다. 그가 전한 네 번째 신탁에 나오는 “별”과 “왕홀”(민수 24,17)이 그것입니다. 이 별이 모압과 그 주변을 정복하리라고 예고하므로, 다윗과 관련된 신탁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 미래로 투영시키면, 이는 다윗의 후손에 대한 예언이 됩니다: “나 예수가 (…) 다윗의 뿌리이며 그의 자손이고 빛나는 샛별이다”(묵시 22,16). 이후 동방 박사들도 “별”의 움직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인식하지요(마태 2,1-12). 민수기에서 발라암의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이유는, 이방 예언자조차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였고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막을 자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메시아를 알아보았듯이, 발라암도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 예언자들에 앞서 구세주와 관련된 신탁을 전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성탄을 기뻐하는 오늘, 모압 벌판에서 주어진 발라암의 옛 예언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2월 25일(가해) 주님 성탄 대축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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