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11월 17일(금) 복음 중에서 이해 안되는 부분 질문 드립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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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7-11-17 | 조회수2,286 | 추천수0 | 신고 |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200주년 기념 주해서 각주 부분을 발췌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오느니만큼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노아(창세 6ㅡ7장) 아 롯(창세 19장)의 고사를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록작가와 루카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인자(사람의 아들)의 내림을 동시사건으로 본 나머지, 인자(사람의 아들)의 내림이 다가오 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두 가지 고사를 이해했다. 야훼께서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태워 버리실 때 롯의 아내는 달아나다 말고 불타는 도시를 돌아본 죄로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했다는 고사가 있다(창세 19,26). 32절은 롯의 아내마냥 미련을 갖지 말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루카가 덧붙인 구절이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노아와 롯 시대의 인간들처럼 사는 사람이요, "잃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이다. 37ㄴ절(= 마태 24,28)은 원래, 필연성을 가리키는 속담이었을 것이다. 어록에서는 37ㄴ절이 34-35절과 직결되었다. 그 뜻인즉, 인자(사람의 아들)에게 버림받 은 남녀(34-35절)는 마치 시체와 같아 독수리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것. 곧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럼 루카는 37ㄴ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시체가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인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인자(사람의 아들)도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리라 (17,21ㄱ.24; 21,35 참조). 또는 인자(사람의 아들)가 내림하는 곳에 인류가 반사적으로 모 여온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루카는 인자의 내림 장소에 관한 묵시문학적 질문을 일축 했다. ● 발췌 끝 그러니까 위의 내용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이해해 볼 때 ... '사람의 아들의 날(종말)에는 노아의 시대 사람들처럼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멸망하는 일 이 없어야 하고, 또한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지 마라'는 말씀을 믿지 않고 뒤돌아 보 다가 멸망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잘 받아들여 진실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그런 의미로 이해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구원은 누구나 몽땅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둘 중에 하나는 데려간다는 말씀 안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의미는, 노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어 구원받았듯이 두 사람 중에서 노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필히 구원 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 리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필연적인 말씀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동문서답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아직까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느냐고 아직까지 장소적 개념으로 묻는 제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야곱의 우물 복음묵상의 글 내용으로 이해해 볼 때 ... 독수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볼 때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서는 그러한 일이 필연적 으로 일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회개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럼으로써 그가 노아처럼 구원을 받아 누릴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이것은 필연적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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