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성경 시대 장례 관습 이스라엘 유적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매장 양식이 있습니다. 산기슭에 형성된 동굴이나 일부러 깎아 만든 굴을 가족 무덤으로 썼던 것입니다. 굴 안에는 방을 여럿 만들고 시신을 누일 돌 판을 두었습니다. 시신을 안치한 뒤에는 냄새가 배어 나오지 않도록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습니다. 관은 대체로 쓰지 않았고, 시신은 상여로 운반한 듯 보입니다(2사무 3,31). 이런 식으로 묻은 뒤 1년가량을 기다린 다음, 동굴에 들어가 남은 뼈를 모아 그곳에 따로 마련된 구덩이로 옮겨 넣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후손이 묻힐 공간을 마련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사라를 묻은 막펠라 동굴(창세 23장)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라 이후 아브라함, 이사악과 레베카 그리고 레아가 그곳에 묻혔고, 야곱도 같은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합니다(창세 49,29-33). 판관 8,32에서는 판관 기드온이 죽어 아버지 요아스의 무덤에 묻혔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한 구덩이 안에 온 가족의 뼈가 모이게 되므로 ‘조상과 함께 잠들다.’(창세 25,8; 1열왕 2,10 등)라는 표현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기원전 6세기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바빌론 넓은 계곡에 뼈가 잔뜩 쌓여 있던 환시(에제 37,1-14)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을 조상으로 둔 거대한 가족 공동체이기에, 그들의 바빌론 유배가 마치 가족 무덤에 묻힌 것처럼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신약 시대 매장 방식도 이와 비슷하였지만, 한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시신을 안치한 뒤 1년 정도 기다린 점은 같지만, 가족의 뼈를 한 구덩이에 모으지 않고 저마다 뼈관에 이장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 시대부터 강해진 부활 사상(2마카 7,14.23; 다니 12,2 등)의 영향으로 개인의 부활을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학자들도 물론 있지만, 신약 시대에 부활 사상이 강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도 처음에 관을 쓰지 않는 관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인에 살던 과부의 아들 장례식(루카 7,11-17)이 그 일례인데요, 여기서 “관”으로 의역된 그리스어 [소로스]는 ‘뚜껑 없는 들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14절) 하시자, 과부의 아들이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하지요(15절). 이때 덮개를 치울 필요 없이 곧장 일어났다는 점과 그것이 바로 들것의 형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년여 간격을 두고 치른 이런 매장 풍습은, 예수님을 따라가기 전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던 이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하게 해줍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 주님의 공생애가 3년임을 생각할 때, 1년은 기다려 주기 어려운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옛 관습을 당시 문화에 맞춰 읽으면, 보이지 않았을 여러 면을 인식하게 되어 성경을 보는 눈이 깊어지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3월 26일(가해) 사순 제5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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