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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아비멜렉(판관 8,29-9,57)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0 조회수1,442 추천수0

[구약성경 순례 - 구원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아비멜렉(판관기 8장 29절~9장 57절)

 

 

미디안족과의 전쟁이 끝나자 기드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 살았습니다. 아내가 많았던 그에게는 일흔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외에도 스켐의 소실에게서 난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또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 신을 섬겼고, 기드온의 업적도 잊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비멜렉은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하였던 왕권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먼저, 그는 스켐의 외숙들을 찾아가 혈연에 호소하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의 외숙들은 스켐의 지주들을 찾아가 지연에 호소함으로써 아비멜렉을 지지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스켐의 지주들은 바알 브릿 신전에 보관된 돈 일흔 세켈을 아비멜렉에게 내주었고, 아비멜렉은 이 돈으로 건달들을 사서 아버지의 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자기 형제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살해합니다. 막내인 요탐만 숨어 있다가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스켐인들은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판관 9,1-6에는 아예 하느님이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계산에 바탕을 둔 선택이었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요탐은 그리짐 산꼭대기에 올라가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스켐의 지주들에게 우화 하나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아비멜렉도, 스켐의 지주들도 모두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선언하고 그는 브에르로 달아납니다.

 

아비멜렉의 다스림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스켐의 지주들은 그를 배반합니다. 판관기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기드온의 일흔 명의 아들들의 피를 되갚으시려고 스켐 지주들에게 악령을 보내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이중원인론에 입각한 역사 해석의 한 예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악령을 보내신 경우는 이곳 외에 1사무 16,14에서 사울에게 악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악령은 사탄이나 마귀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스켐 지주들은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자 아비멜렉에게서 돌아섭니다. 먼저 그들은 산꼭대기에서 행인들을 약탈하여 치안을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 아비멜렉의 지지율을 떨어트립니다. 그리고 이곳에 새로 이주해온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지지합니다. 가알은 스켐 지주들의 지지를 받자 공공연히 아비멜렉을 비난합니다. 이들이 반란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아비멜렉은 야간 매복 작전으로 스켐을 공격합니다. 아비멜렉은 스켐 성읍의 백성을 죽이고 그 성읍을 폐허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엘 브릿 신전의 지하실로 피신한 스켐의 지주들을 벌하기 위하여 생 나뭇가지를 베어 신전 지하실 쪽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 버립니다. 요탐의 저주대로 아비멜렉의 불로 그곳에 숨어 있던 천 명가량의 사람들이 죽고 맙니다. 이어서 그는 테베츠로 진군하여 그곳의 성읍을 함락시켰는데, 그 성읍의 사람들이 탑의 옥상으로 피신하자 이번에도 탑에 불을 지르려고 탑 어귀로 다가갑니다. 그때 어떤 여자가 그를 향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은 아비멜렉은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판관기의 저자는 아비멜렉 이야기를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인간의 힘과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어떤 인간의 악도 하느님의 힘을 소멸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은 스스로를 드높이고 내세우려는 인간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욕망을 잘 길들이지 않으면 우리 역시 아비멜렉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요한 성소가 있었던 스켐의 바위에 앉아 과연 역사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2023년 4월 9일(가해) 주님 부활 대축일 가톨릭마산 8면, 김영선 루시아 수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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