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사마리아인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로 구분된 지역이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 또 하나의 나라가 존재하는 셈인데요, 그곳에는 이스라엘인이 아닌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삽니다. 성경에 종종 언급되는 “스켐”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스켐에는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사마리아 공동체도 있습니다. 그리짐 산기슭은 그들의 보금자리입니다. 예부터 사마리아인은 주님 성소가 자리한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리짐 산이라 믿어왔기에 그곳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사마리아인이 유다인과 분리된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설은 옛 아시리아의 유배 정책과 관계 있습니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후, 수도 사마리아의 백성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에는 다른 지방의 이교도들을 정착시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흐리고 고향과 연을 끊어 아시리아에 잘 동화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남왕국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더 이상 동족으로 보지 않고 이방인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요한 4,9에 나오듯이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마리아인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예수님께서 하신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목이 배경인데, 예부터[마알레 아두밈] 곧 ‘붉은 오르막’이라 일컬어진 길입니다. 토양 색깔이 붉고, 구릉진 광야 길에 강도들이 숨었다가 길손을 공격하여 종종 피로 물들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도 강도 당한 이가 등장합니다. 그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사제였는데, 그는 곧장 길 반대편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아마 강도 당한 이가 죽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제는 직계 가족이 아니면 사체와 접촉해서는 안 됐습니다(레위 21,1-4 등). 하지만 아직 죽었다는 확증이 없고, 사제는 마침 그 길을 ‘내려가고’ 있었으니 예루살렘 성전 직무를 끝내고 귀향하던 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직무 때까지 정결례할 시간도 충분했을 것이고, 가령 쓰러진 이가 이미 죽었다 해도 그를 묻어주었다면 더 없는 자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후 레위인도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인이 강도 당한 유다인을 불쌍히 여겨 응급처치를 해주고 여관으로 옮겨 돌봅니다. 그다음 날에는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지불하며 뒤를 부탁합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이 하루 일당에 해당하였으니(마태 20,2) 두 데나리온은 상당한 액수였지요. 이 비유는 세상일이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생판 남이라 여긴 사람도 참이웃이 되어줄 수 있으며, 우리도 그런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현재 [마알레 아두밈] 길에는 사마리아인 기념 여인숙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리스도를 따른다면서도 정작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4월 16일(가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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