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베텔과 천상의 계단 베텔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7km가량 떨어진 곳으로, 야곱이 꿈 속에서 하늘까지 닿는 천상의 계단을 보았던 곳입니다(창세 28,10-22). 당시 야곱은 에사우에게 가야할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탓에 형을 피해 도망가던 길이었습니다. 어머니 레베카의 고향인 하란으로 외숙 라반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사악이 가나안 여인이 아니라 외숙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1-2절). 그러다 ‘루즈’라는 성읍에서 하룻밤 쉴 때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천상의 계단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 서 계시며(13-15절) 야곱이 어디로 가든 그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그곳이 하늘의 문이었음을 깨닫고,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을 세웁니다. 그 돌 베개가 꿈에서 본 환시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읍의 이름을 베텔이라고 바꾸어 칭합니다(17-18절). 베텔은 히브리어로 [베잇 엘] 곧 ‘하느님의 집’을 뜻합니다. 하늘이 문처럼 열려 천사들의 무리가 나타난 진귀한 장면을 지명 안에 함축하려 한 듯합니다. 그런 다음, 야곱은 자신이 세운 돌기둥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곳을 성별 聖別하는 동시에(탈출 40,9) 자신이 하는 서원의 증표로 삼았습니다(창세 32,13). 그가 한 서원은, 주님께서 약속대로 자신을 보호해 무사히 귀향하게 해주신다면, 주님께서는 그의 하느님이 되실 것이며, 기념 기둥 자리에는 제단을 쌓고 십일조를 바칠 거라는 약속이었습니다(창세 28,20-23). 야곱이 꿈에서 본 천사들 무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옛 유다 문헌에서는, 층계를 오르내린 천사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였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들은 야곱이 가나안을 떠날 때 동행해 줄 천사들이고, 층계를 올라가는 이들은 야곱이 가나안에 있을 때 보호해주던 천사들이라는 것입니다(『창세기 라바』 68,12). 다시 말해, 그들은 야곱의 수호천사들이었던 셈입니다. 지금은 야곱이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가는 길이니 이제껏 보호해주던 천사들이 하늘로 돌아가고, 가나안 밖에서 동행해줄 천사들이 내려오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천상의 계단에 서 계실 때 ‘어디서든 야곱을 지켜주겠다.’(창세 28,15) 하신 약속을 떠올려주는 동시에, 시편의 내용도 생각나게 합니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0-12). 이 환시에 힘입은 야곱은 이후 훨씬 성숙해진 모습으로 성장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0년 타향살이를 한 끝에,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형 에사우에게 용서를 구하였으며(창세 33,1-11) 베텔에서 한 서원도 지킵니다. 베텔에 제단을 쌓고 식솔들에게 낯선 신을 모두 버리게 한 것입니다(35,2.4.7). 현재 베텔에는 정체 모를 돌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그 옛날의 수호천사들과,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을 천사들의 천상 계단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5월 7일(가해)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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