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기쁨과 삶을 담은 사도행전 읽기 20] 필리포스의 선교와 메시아(사도 8,26-40) 사도행전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파한 필리포스에 대한 또 다른 일화를 전해줍니다. 이 일화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어떤 말씀을 성취하셨는지, 그리스도인들이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지 알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필리포스는 천사의 인도로 예루살렘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 내시는 이사야서의 53,7-8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이사야 52,13-53, 12의 ‘고통받는 주님의 종’에 대해 노래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다인들이 강하게 바라던 메시아는 고난을 받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던 메시아는 영광으로 가득 차 이 세상에 왕으로 등극하여, 다른 민족들을 심판하고 온 세상을 통치하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가 제시하는 메시아는 영광스럽게 왕의 자리에 등극하는 대신 고난과 상처를 통해 다른 이들의 죄를 속죄하는 메시아입니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이사 53,10-11) 영광의 메시아를 꿈꾸던 유다인들은 속죄를 위해 이루어진 십자가상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죄를 없애는 속죄의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그분을 통해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내시도 필리포스를 통해 그러한 이사야 예언서의 뜻을 제대로 파악했고,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어 세례를 청합니다. 이때 내시는 필리포스에게 세례를 받기 위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세례 때 사람들은 같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통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뛰어나서, 우리가 위대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핵심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섬기며, 내 이웃을 위해 희생과 사랑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천년 왕국을 꿈꾸며, 다른 이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이비 종교의 사상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2023년 6월 11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서울주보 5면,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