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2018. 8.7 제1독서 <야곱의 천막> : 예레미야가 예언한 성전 붕괴와 그 이후, 찾아오는 회복의 날 | 카테고리 | 성경 | ||
---|---|---|---|---|
작성자전창범 | 작성일2018-08-08 | 조회수3,603 | 추천수0 | 신고 |
1. 전 이해, 예레미야라는 예언자에 대하여...
간략하게 적기만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솔로몬이 지었던 1차성전이 붕괴되는 시기 전을 살았던 인물로, 그 자신은 본래 사제 가문 출신이죠.
어느날 들이닥쳐 그를 사로잡은 하느님의 말씀은 그를 철저한 외톨이로 만들게 되는데요. 많은 예언자가 그랬듯이 그가 전하는 말 뿐만 아니라, 그의 삶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시는 예언적 표징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잘 알고자 하신다면, 주석성경의 예레미야서 입문을 일독해보실 권합니다.>
출신은 사제 가문이지만, 그는 이런 예언을 수도 없이 해야 했습니다. "너희 번제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너희 제사가 나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다."(예레 6,20ㄴ) 더군 다나 도성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 대니, (예루살레아, 교훈을 받아들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와 갈라서고 내가 너를 폐허로 만들어 인적 없는 땅이 되게 하리라. 예레 6,8)
그가 가까운 이들로부터 고초를 겪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애는 대체로, 이스라엘에 쏟아질 저주와 징벌의 표징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꼴을 보고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되죠.
2. 복잡한 정치상황 등은 건너띠고 질문에 맞춰 살펴보는 "야곱의 천막" 개괄 (결론은 3번)
요 며칠 사이의 1독서가 계속 예레미야 서로 봉독되고 있죠. 특히 내일 목요일 1독서는 '새로운 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러한 사항을 잘 언급하셨다고 보는데요.
질문하신 '야곱의 천막' 다음과 같은 상징 체계에서 함께 움직입니다.
ㄱ. 성전 vs 야곱의 천막 유다인들이 오랜세월 동안 겪었던 문제 중 하나는 이방신 숭배 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유다인들은 주로 야훼 하느님을 목축이나 전쟁의 신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정착하여 농사를 지어야하는 상황에선, 농경의 신 곧 바알을 동시에 섬기려는 유혹을 항상받았고 종종 거기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음이 갈라진 상황에서, 바치는 제물 또 하느님께서 일찍이 내려신 하느님 계명에 따라 살지 않고 동족을 착취하며 살면서도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하느님 마음에 들리 없었고, 우상 숭배의 마음과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 그 한복판, 눈먼 인도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그 성전은 옛적 순수함과는 반대되는 그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도성 멸망의 예고는 성전을 붕괴시키겠다는 것이기도 하니, 유다인들의 사고 방식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나, 그들은 그걸 맹신하여 예언자에게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야곱의 천막이란 표현을 썼을까? 야곱의 천막은 어느모로 보나 성전에 대칭할만한 상징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요. 천막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모세 때에 이르러서 인데, 그점으 감안하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죠. 하지만, '천막'이라는 점이 이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도 합니다. 그보다 먼저 잘 아실테지만 야곱의 일대기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야곱은 형 에사우의 장자권을 붉은 콩 죽 한 그릇으로 차지하고, 아버지의 최후 축복도 가로 챘던 인물입니다. 왠지 사기성 짙은 인물이지만, 아무튼 하느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역사의 한 꼭지를 장식하는 이 사람은 형을 피해 달아나 유배와 같은 생활을 했다가, 재산과 부인들을 얻고 돌아오게 되고 그가 나은 아들들이 나중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가 됩니다. 그가 낳은 아들 중 하나, 가장 예뻐했던 꿈쟁이 요셉의 도움으로 대기근의 위기를 모면하고 이집트로 피난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죠. 아시겠지만, 그의 후손은 나중에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모세가 나타나 그들을 이끌고 탈출합니다.
3. 야곱의 천막 결론
간단하게 본 야곱의 인생 + 예레미야 예언자의 핵심 메시에서 우리는 야곱의 천막이 가지는 몇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데요.
하나, 하느님의 계약(정확하게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 그의 후손을 통해 이어지므로, 또 그가 장자권을 빼앗았으므로)이 올바르게 서 있는 장소 둘, 하느님께 보이는 순수하고 전적인 신뢰의 표현(그의 도망 생활을 감안한다면...) 이 그것입니다.
앞의 상황들을 보셨다면, 1독서의 전반부는 그 많은 예언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도성과 성전에서 횡횡하는 불의에 대한 고발의 표현입니다. 이때 "정부"란 말 그대로, 하느님과 맺은 '혼인'같은 계약에 충실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섬겼던 여러 주님들, 곧 이방신들을 의미하죠. 전례독서 문맥에 따라서, 이 정부들은 외부 세력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지만, 원수를 시켜 내리치는 것은 "훈계"라는 것입니다. 곧 영원히 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 교훈을 얻게 하겠다는 훈육적 징벌의 성격이 강하죠.
이 때문에 다수에 예언처럼 주어지는 예언은 곧 복원과 회복의 예언을 의미합니다. 내일 1독서에 가서야 확실해 지겠지만,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를 마음에 새겨질 새 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하느님께 향한 회복된 신앙, 순수한 신앙을 의미하고, 그 신앙으로 예배하는 장소로서 '야곱의 천막'이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죠.
좀 어려웠을까요?
4. 가톨리교회의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는 메시지
이제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데요. 예레미야 예언자는 '마음에 새겨질 새 법'에 대해서 말하고,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의 백성이 '새 영'을 받아 새롭게 일으켜질 것이라고 예언하며,
이 주님의 영, 또 마음에 새겨질 법은 <마지막 날>, 혹은 <그 날>에 가서 일어날 일로, 이러한 표현은 주님께서 이룩하시는 구원의 결정적 날을 뜻합니다. 또한 요엘 예언자 역시도 주님의 영이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상술은 뒤에).
이 영은 참으로 하느님을 제대로 진실하게 섬길 수 있게 해주는 영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요. 곧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보호자 성령, 곧 진리의 영이 바로 그 영이십니다.
이 문맥은 다시 사도행전에서 이어지게 되는데요. 베드로 사도께서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말합니다.
곧,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일들이,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에게서 이루어 졌다는 것으로, 이들은 알다시피 교회의 초석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분명 자기 자신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구세주께서 세우신 구원된 이들의 공동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의 공동체, 등으로 말이죠.
5. 우리가 헤아려볼 수 있는 메시지를 위한 질문
- 나는 아버지와 아드님의 영을 받아 그 영의 인도에 따라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성령의 인도를 받았던 사도들이 교회 안에 전수하여오고 있는 삶과 그 가치를 얼마나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 또 세상에 드러나는 구원의 표징으로 이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 얼만큼 그 영의 주인이신 분과 일치하며 살아가려 하는가?
뭐 이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그럼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