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하느님의 신부 이스라엘과 호세아의 창녀 아내 옛 이스라엘의 북왕국에 속한 이즈르엘 평야에서는 예언자 호세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의 활동 장소가 기원전 8세기의 북왕국이고, 그가 얻은 첫아들의 이름이 “이즈르엘”(호세 1,4)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혼인 관계로 묘사하며,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신부(新婦)에 비유한 최초의 예언자입니다(2,22 등). 그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창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데(1,2), 이를 통해 당시 백성의 죄가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가나안의 우상 바알에게 빠져 남편이신 하느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불충을 자신의 혼인 생활로 꼬집은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예언자가 창녀를 아내로 맞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상징행위로 호세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예언자의 삶이란 참으로 많은 걸 희생하고 감내했던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메르는 직업 매춘부는 아니지만 품행이 좋지 않은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메르가 낳은 아이도 자신의 아이인지 호세아는 확신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고메르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충실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렇게 호세아가 자신의 온 삶으로 그려 보인 혼인의 비유는 후대 예언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례로, 광야 방랑기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신혼 시절로 묘사한 호세 2,16-17은 예레 2,2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바빌론 유배(기원전 6세기) 이후에도 이런 신랑-신부의 비유는 계속됩니다: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이사 54,6). 이는 우상숭배, 곧 불륜 죄로 이스라엘이 소박 당하여 바빌론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들이 죗값을 치른 뒤에는 하느님께서 그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시리라는 예고였습니다. 색정적 표현이 많아 정경(政經) 논란을 일으킨 아가(雅歌) 역시 호세아가 시작한 혼인의 비유에 힘입어 정경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가에 묘사된 두 연인의 사랑이 유다교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사랑,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신랑에 비유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마태 9,15). 음란한 여인과 혼인하여 아내의 배신을 지켜보아야 했던 수치와 고통은 호세아에게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인 생활을 통해 그는, 자신이 아내를 용서하듯 하느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비록 수치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호세아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이 주님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강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0월 15일(가해) 연중 제28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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