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하느님의 산 성경에는 산이 자주 등장합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 올라 하느님에게서 십계명을 받았고(탈출 24,12),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에 맞서며 참하느님이 누구신지 증명하였습니다(1열왕 18장).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참행복의 말씀으로 군중을 가르치셨고(마태 5장), 높은 산 위에서 당신의 신성한 참모습을 드러내시기도 하였습니다(마태 17,1-9). 그럼, 성경에서 신현(神顯)과 관계되는 장소로 산이 주로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대인들은 세상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역, 땅은 인간의 영역, 땅 밑은 죽은 자들의 영역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 가운데 하느님이 계신 하늘을 동경하였는데, 그런 마음은 창세 11,1-11의 바벨탑 이야기에 잘 드러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셨다는 점도 이 같은 관점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신관은 주님의 기도에도 반영되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서 기도를 바칩니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산은 하늘과 가까운 장소라 거룩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 이스라엘 백성과 주변의 민족들은 신을 섬기는 제단을 높은 곳에 만들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제단이 산당(山堂)으로 나옵니다. 다만 성경에는 산당을 비판하는 구절이 많아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데요, 그렇다고 산당이 처음부터 부정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고(1사무 9,12), 솔로몬도 성전을 봉헌하기 전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올렸습니다(1열왕 3,2-3). 그러다 마침내 모리야산 위에 주님의 집을 지어 봉헌하게 되지요(2역대 3,1). 그 뒤 산당이 불법적인 장소로 바뀌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정착한 뒤, 종종 가나안의 산당을 하느님의 제단으로 바꾸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나안의 악습이 점점 되살아나 인신제(人身祭)와 결부되거나 우상숭배의 장소로 타락하였던 것입니다(1열왕 14,23-24; 예레 19,5; 에제 6,3 등). 이에 결국 남왕국 유다를 다스리던 요시야 임금이 기원전 622년에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그는 경신례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 한곳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제단은 폐쇄하였습니다(2열왕 23,8).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은 산당에서 우상숭배를 벌이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산당을 만든 근본 동기는 하느님과 가까워지고픈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2,2)는 예언이 나옵니다. 사실 성전이 자리했던 산의 고도는 750미터가량이라 세상 모든 산보다 높은 건 아닙니다. 이는 천지의 창조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신 곳이라 상징적으로 높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전한 예언처럼, 오늘날 유일신을 섬기는 3대 종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모두 성전산(사진)을 성지로 여기니, 그곳으로 만민이 모여오리라는 이사 2,3의 신탁은 이런 식으로 성취되었다고 하겠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0월 22일(가해)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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