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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희년과 속량 제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31 조회수572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희년과 속량 제도

 

 

나자렛에 자리한 회당 유적지에 가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대희년(루카 4,16-30)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요즘에는 빈민 구제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존재합니다만, 성경 시대에는 희년법과 속량(贖良) 제도가 있었습니다. 희년은 레위 25장에 규정된 제도로서, 가난 때문에 조상에게 받은 상속지를 팔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팔아야 했던 백성이 자유를 되찾고 땅도 환원받을 수 있는 해였습니다. 곧 경제적 곤란과 속박에서 벗어나 모두가 자유롭게 되기에 ‘복된 해’(禧年)였던 것이지요. 희년은 5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므로, 원칙적으로 모든 백성이 평생에 한 번은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희년법의 핵심은 가족과 상속지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족이 땅을 잃고 종으로 전락하지 않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전체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속량을 또한 의무화하였습니다.

 

속량 제도는, 백성이 땅을 팔고 종이 되어도 언제든 되살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합니다. 본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형제나 친족이 대신 대가를 치러줄 수 있었는데요, 이런 대속자를 성경에서는 “구원자”(레위 25,25; 룻 4,3-4 등)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친족이 대속하더라도 결국 재산이 첫 번째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경제적 고통이 반복될 뿐이므로, 희년에는 그것을 원(元)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본인이나 친족 모두 능력이 없어 재산을 되찾지 못한 경우도 생겼습니다. 이럴 땐, 희년에 하느님께서 친족처럼 행세하시어 땅과 백성을 속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친족이 없는 고아의 “후견인”(잠언 23,11), 곧 구원자도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이런 제도가 어떻게 성경 시대에는 율법으로 규정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느님이 땅의 주인이시라는 믿음 때문입니다(레위 25,23). 더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주셨으니, 당시 사건을 기억하여 궁핍해진 형제들을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은 임금에게 만 탈렌트를 빚진 종과 같고, 그들 가운데 가난해진 형제는 동료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마태 18,23-35). 그래서 이스라엘은 희년이 될 때마다 토지의 소유권을 원위치시킴으로써 하느님이 땅의 원주인이자 구원자이심을 천명하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손으로 세상에 나온 우리에게 처음부터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나와 나의 조상이 태어나기 전부터 삼라만상은 존재하였고, 그 모두는 창조주 하느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대희년을 선포하셨고(루카 4,16-30),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태 22,21) 하고 가르치셨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소유가 본래부터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정할 때 기꺼이 이웃과 나눌 수 있고 하느님 나라에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희년 율법에서 배우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0월 29일(가해) 연중 제30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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