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첫 번째 이야기, 거룩함의 의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시나이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하여 그분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막을 백성 한가운데에 두어야 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거룩하신 하느님은 그 어떤 세속적이고 부정한 것들과는 병존하실 수 없기에, 거룩한 현존을 모실 하느님의 백성 역시 거룩하고 깨끗해야 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이제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되어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민족들처럼 살 수 없었다. 거룩함, 그것은 그들의 필연적인 사명이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위 19,2) 다른 민족들과는 ‘다른’, ‘하느님의 백성’다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할 그들의 사명은 단지 레위기에서만 강조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약은 역사 전체에 걸쳐, 여러 민족과 문화, 종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거룩함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8번에 걸쳐 연재될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에 따라, ‘거룩함’이라는 주제를 통해 구약 역사 전체를 짚어 보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속에 살면서도 때 묻지 않으며, ‘하느님 백성’이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교훈으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구약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자 했던 삶의 ‘거룩함’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거룩함’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지만, 정작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래 ‘거룩하다’는 말은 ‘잘라내다’, ‘분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 그 무언가가 이 세상 속된 것,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과는 온전히 ‘다름’을 표현하는 용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다’라고 말할 때는, 그분이 이 세상 모든 피조물과 모든 속된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고, 구별되어 계시는 분이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백성들이 감히 하느님과 같은 본질을 지닌다거나 신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도, 수많은 민족들 사이에 뒤섞여 살면서도 그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이다. 그렇게 그들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여 그분의 말씀에 따라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 때, 다른 민족들은 그들을 보며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알아보게 될 것이며,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물’이라고 표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기름’이다. 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선별된, 기름 부음 받은 백성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백성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의 지침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 율법’이다. 요한복음의 말씀이 떠오른다.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6-17)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백성,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살아갈, 이 세상과는 구별된 ‘남다른’ 백성, 그들은 이 ‘거룩함’을 어떻게 살아갔는가? 이 관점으로 구약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2023년 11월 5일(가해) 연중 제31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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