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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두 번째 이야기, 가나안을 향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15 조회수374 추천수0

[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두 번째 이야기, 가나안을 향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이었다. 노예나 다름없는 하찮은 민족이었다. 그들이 시나이에서 새로운 백성으로 태어났다. 온 세상 유일하신 분, 전능하신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거룩해져야 했다. 이 세상과는 달라야 했고, 구별되어야 했고, 하느님의 백성다워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들과 하느님만이 존재하는 황량한 곳에서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기는 쉬웠다. 그곳이라고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어찌 보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곳에는 ‘세속’이 없었다. 이방신도 없었고, 그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물질적인 것들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야는 ‘온실’과 같았다. 아직 그들은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했다.

 

그러한 그들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사건이 생긴다. 민수기 13-14장에 나오는 가나안 정탐 사건이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데, 하느님께로부터 약속받은 그 좋은 땅을 보고서도 ‘그 땅의 주민들이 우리보다 강하여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서는 자신들이 메뚜기 같았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낮고 취약한 자존감인가? 그들은 아직도 이집트에서 살아온 노예로서의 정체성을 끌어안고 있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탄생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 모습 그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어찌 되었을까?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모른 채, 위대한(?) 가나안 사람들의 문화에 젖어, 아니, 그 문화를 섬기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빠르게 모든 면에서 가나안 사람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오래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외국 문물을 따라 하던 일들이 많았다. 영화도, 옷차림도, 헤어스타일도, 음악도 음식도…. 모두 일본이나 미국을 따랐다. 그러나 요즘은 한국 문화가 대세가 되었다. 영화, 음악, 음식할 것 없이 거꾸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것들을 따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양인들이 달고나를 만들어 먹는 장면은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문화는 그렇게 의식,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파고든다. 그래서 또한 무섭다. 이것이 가나안 문화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이었다.

 

하느님은 이제 백성들을 훈련하기 시작하신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이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들을 만드시기 위함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민족을 만드시기 위함이다. 성경에서 40의 의미는 늘 그랬다.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40일도, 홍수로 세상을 정화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신 하느님의 40일도. 40은 늘 새로운 무언가를 위한 정화요, 훈련이며, 준비였다. 백성들은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40년간 광야에서 단련 받았다. 그렇게 말씀으로, 율법으로 무장되었다.

 

사실 40년이라는 시간은 세대가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40년이 지났을 때, 가나안 정탐 때에 살아있던 이들 중 남아있는 이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칼렙 등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하느님께 충실했던 몇몇 1세대, 그리고 새로이 광야에서 태어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2세대로 하느님은 이제 새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약속의 땅에 합당한 이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여호수아기는 그들로 시작된다.

 

그러나 또다시 시간은 흐르고, 세대는 바뀐다. 야속하게도 가나안 문화의 유혹은 계속될 것이다. 농경 생활을 하니, 광야의 하느님은 점점 잊혀진다. 풍요와 쾌락은 끊임없이 백성들을 부추기며 그들의 삶을 뒤흔들 것이다. 이 백성은 거룩함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들은 세상 속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2023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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