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로가 죽은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가 원하는대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셨을까요?
라자로의 동생들은 오빠가 부활때가 아닌 바로 육적으로 살아 날걸 알았더라면 울지 않았을것같아요.
찬미예수님! 이진숙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예수님은 육화하시어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오랜 친구 라자로의 죽음을 목전에 보시고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복음, 아니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이 우시는 대목은 바로 여기 뿐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심을 드러내시기 전에 이런 인간적인 면을 보이셨을 겁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시한 라자로의 형제, 많은 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나 당대의 유다인들은 세상 종말에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라자로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가 그 죽음에 대해 애도한 것입니다. 이는 현세에서 죽은 이들이 바로 다시 살아남을 믿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당신 권능의 표징을 보이셨습니다. 이로써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당겼습니다. 참 좋은 묵상거리를 주시는 질문에 감사를 드립니다. ^^+
찬미예수님! 이진숙님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이진숙님의 질문을 계기로 요한11장을 읽어보았습니다. 11,33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예수님께서는 곧 다시 살려내실 죽은 라자로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니라, 죽은 오빠 때문에 우는 마리아와 함께 우는 유다인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묵상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에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여셨으면서도, 우리가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 '우리 감정과 무관하게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과 동참하여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1장을 읽으며,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