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일용할 양식 | 카테고리 | 성경 | ||
---|---|---|---|---|
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9-01-03 | 조회수2,872 | 추천수0 | 신고 |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각주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1. 여기서 "일용할"이라고 옮긴 그리스어 형용사 에피우시오스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낱말이다. 그 뜻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어원을 따져 본다면 "생존 필수적"이란 뜻이 들어 있다. "생존 필수적"을 의역한다면 "필요한" , "오늘 필요한" , "일용할"이 된다. 실제로 시리아 역본에서 이렇게 번역했다. 그닐카 교수가 지지하는 설로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
2. 어원 분석 결과 또 한 가지 가능한 번역이 있는데, 곧 에피우시오스를 "내일"로 옮길 수 있다. 이같이 번역하면 넷째 청원은 이렇게 된다. : "우리의 내일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모레 글피까지는 구하지 않지만 내일 빵만은 마련해 주십사는 것이다. 히에로니무스 교부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실제로 히브리 복음서에서는 히브리어로 마태 6,11을 그렇게 썼다 한다. 룻즈 교수가 지지하는 설이다.
3. "내일"을 오늘과 모레 사이의 하루로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미래"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 미래라도 보통 미래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미래, 곧 종말 미래로 풀이하는 설이 있는데 이 설에 따라 넷째 청원을 의역하면 이렇다 : "우리의 종말 미래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이는 종말을 몹시 재촉하는 청원이다. 예레미아스 교수와 브라운 교수의 설이다. ●
위의 자료를 통해 유추해 볼 때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생존 필수적"인 어떤 것들을 다 포함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의식주 모두와 더불어 영적으로 생존 필수적인 모든 것을 청원하는 기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의식주의 물리적인 어떤 생존 필수적인 것들과 더불어, 사랑과, 이해와 용서 등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면 어떤 면에서는 다 해결 될 수 있는 어떤 문제일 수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과 가장 일치할 수 있는 성체를 영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관한 성경구절들 ...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너희는 썪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47-51) "그러므로 너희는 '무억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 ,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