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마지막 이야기,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 거룩한 삶이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마치 연꽃과도 같다. 진흙탕 속에서도 깨끗하고 고결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에 불교의 상징으로 쓰이지만, 이것이 어찌 불교만의 것이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세상 사람들의 삶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이 있다. 사회의 법과 하느님의 법은 다르고 대중의 길과 하느님 백성의 길은 다르다. 구약은 이러한 하느님의 길을 걷고자 노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두 개의 길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져 각자도생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세상을 버리고 우리만의 삶을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느님께 속한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길을 걷고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복음화’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 먼저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기에, 하느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하느님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할 백성들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기 전에 40년간의 광야 생활 동안 당신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훈련시키셨다. 하느님은 바빌론 유배라는 시련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이 다시금 당신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그 말씀을 순종으로 받아들이고 섬길 때,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게 되는 것이다. 아! 온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법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이가 스스로 사랑의 법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럴 수 있다면, 그 순간, 그 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하느님의 나라는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물들어가는 것이구나 싶다. 우리 각자의 삶엔 색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겐 세상 사람들의 색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색이 있다고. 우리 공동체들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을까? 세상의 색일까? 복음의 색일까? 세상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세속화’요, 오히려 이 세상을 복음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다면 그것이 ‘복음화’일 것이다. 우리가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 생각과 내 가치와 내 삶을 말씀의 빛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그러했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물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면, 사랑이신 하느님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주님의 사람들임을 알게 될 것이고(요한 13,35 참조) 그들도 우리를 보며 복음의 색으로 물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민족들의 문화와 유혹들 앞에서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신들만의 길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그들의 정체성이요, 생명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생명의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법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다시 새겨본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 3.15.16) <지금까지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8편을 기고해 주신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23년 12월 31일(나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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