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이방 예언자 발라암 유다 광야에서는 베두인 목동들이 키우는 나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베두인들은 이런 나귀를 ‘택시’(?)라고 권하며 호객 행위를 합니다. 다소곳이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나귀 택시들을 볼 때면, 주인에게 억울하게 맞고 하소연했던 ‘발라암의 나귀’(민수 22장)가 떠오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벌판에 다다르자, 모압 임금 발락은 이스라엘의 기세에 두려움을 느껴 그들을 저주하려고 발라암이라는 예언자를 데려오게 합니다. 발라암은 ‘발락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처음엔 거절하지만, 발락이 두둑한 복채를 제안하자 마음이 움직여 주님께 재차 여쭈어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따라가도 좋다.’는 허락이 내립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주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막아섭니다. 나귀가 천사를 보고 길에서 비켜나자, 천사를 보지 못한 발라암은 그를 때립니다. 이때 주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주시니, 나귀는 영문도 모르고 때리는 발라암에게 하소연합니다. 이에 발라암은 칼만 있었어도 말대꾸하는 나귀를 죽였으리라고 위협하지만, 저주의 말로 한 백성을 해치기 위해 고용된 그가 언변으로 나귀조차 당해내지 못한 건 역설입니다. 나귀를 굴복시키는 데 ‘칼’을 필요로 했으니 말입니다. 발라암은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셨을 때 비로소 천사를 알아보고, 나귀 덕에 목숨을 구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이후 그는 발락을 만난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어기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을 축복해줍니다. 성경에서는 발라암을 “점쟁이”(여호 13,22) 또는 ‘불의한 자’ (2베드 2,15; 묵시 2,14 등)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는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축복해주긴 하였으나, 애초에 복채의 유혹에 넘어간 상태였다는 점과 관계 있어 보입니다. 모압 임금에게 가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도 파격적인 대가를 제시받자 주님께 다시 여쭈어 봤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뜻을 바꾸어 발라암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하신 건 일견 의문거리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2사무 22,27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한 이에게는 깨끗하신 분으로 대하시지만, 그릇된 자에게는 비뚤어지신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허락은 하셨으나, 곧 천사를 보내어 발라암에게 호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라암도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남깁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실제로 이후 동방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인식하게 되지요(마태 2,1-12). 민수기에서 발라암의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목적은, 이방 예언자조차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복종하였음을,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막을 자가 없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메시아를 알아보았듯이, 발라암도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 예언자들에 앞서 구세주와 관련된 신탁을 전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4년 1월 7일(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