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예수님의 세례, 우리의 세례(마르 1,9-11)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의 한 남자가 길을 떠납니다. 오랫동안 광야에 머물며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된 주님을 맞이하고자 준비하던 요한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남자는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죄를 용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한의 설교를 듣게 된 사람들은 그가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외치는 인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길을 떠난 그 남자는 어느덧 요르단 강에 도착했습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뒤엉킨 사람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는 조용히 사람들 틈에 끼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 차례가 되어 그 남자도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강물에 온몸을 담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물 위로 올라온 그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사람들 앞에 펼쳐집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 사람 위에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놀라운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이 소리는 도대체 뭐지? 지금 물 위로 올라온 이 사람에게 내린 저 성령과 하늘의 음성은 무슨 뜻일까?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사람들은 이 남자가 자신들과는 다르게 하느님과 유일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바로 나자렛 출신의 이 남자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그리고 세례자 요한을 통해 예고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증언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함께 당신의 피로 인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실 세례의 참된 주인이십니다. 마르코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어야 했을까?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굳이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분명 마르코는 이런 질문에 침묵합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자신은 단지 주님이 가시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일 뿐이고, 자신은 단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 모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했던 언급이 눈에 띕니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이 사건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내는 하느님의 계시이며, 동시에 교회가 베푸는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에게도 성령이 함께하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코는 이렇게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명, 곧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하시는 구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21일(나해)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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