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4) 한발자국 내딛은 아브라함 - 카라바조 ‘이사악의 제사’. 아브라함을 묵상할 때 늘 떠나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김미소진(마리아) 작가의 「그래도 앞으로 가보지, 뭐!」를 읽으면서 마음에 두려움을 간직한 채 하느님을 믿고 삶을 한발자국씩 내딛는 작가와 아브라함이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편안한 안주에 대한 미련, 미지에 대한 두려움, 갈까 말까하는 망설임, 그런데 그때 내딛는 그 한발자국이 인생의 지도를 바꿔버린다. 아브라함은 유다인들이 공경하는 성조(聖祖)이며 하느님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인물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의 일생 최고의 시련, 아들 이사악 봉헌을 결정했을 때 그는 절대적인 복종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신앙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앙은 때로는 이론이나 합리로 설명이 불가한 초월적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칼데아는 당시 최고의 문명 도시였다. 갑자기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요지는 “고향, 아버지가 있는 이 땅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대신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복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고향을 떠나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이름 모를 깡촌으로 떠난다? 성경의 행간(行間)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왜 나만 갖고 그래?” “옆집 아무개 다른 사람이 가면 안 되나?” “하느님 말씀만 있지 뭐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데 미치겠구먼!” 결국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만을 믿고 부모와 고향과 이별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일행은 네겝 지방에 도착했는데 기근이 들어 풍요로운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 그런데 이집트의 파라오는 아내 사라에게 흑심을 품었다. 눈치 빠른 아브라함은 자신과 가족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빠지자 아내를 동생이라 둘러댔다. 생존 앞에서는 체면 등 어떤 가치도 의미 없다. 정작 큰 문제는 나이 지긋한 아브라함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하느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초조해지면 판단력을 잃는다. 사라는 가장 충성스런 여종 하가르를 아브라함의 침소로 들여보냈고, 다행히 아들을 낳는다. 하가르는 본색을 드러내고 기고만장해졌고 아브라함의 집안은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하가르는 아들과 광야로 도망쳐 피를 토하며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백 살에 사라에게서 아들 이사악을 안게 된다. 그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런데 행복도 잠시뿐 인생 최고의 시험에 들게 된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 아브라함은 일생의 가장 큰 시련에 빠졌다. 그는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3일 동안 인생의 가장 긴 길을 걷는다. 혼란과 갈등, 고민 끝에 아브라함은 결정했다. 이사악을 바치기로. 아브라함은 일생을 살면서 모든 건 결국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도 무척 고단했고 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채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인이었다. [가톨릭신문, 2024년 1월 21일,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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