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우리의 마음 밭은 어떠합니까?(마르 4,1-9)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과 함께 시작된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뽑으시어 갈릴래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 주시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바로 당신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을 찾아온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신비를 쉽게 알아듣고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 가르침 가운데 마르코가 가장 먼저 전하는 비유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능력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를 설명해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햇볕을 견디지 못해 바싹 말라버렸고,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씨는 좋은 밭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2000년이 지나 전혀 다른 문화와 지역에 사는 우리가 이 비유를 들으면 ‘도대체 씨를 뿌리는 그 사람은 왜 씨를 아무 곳이나 함부로 뿌리는 거지? 농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파종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밭을 갈아 이랑과 고랑을 만든 다음, 고랑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짓거나 아예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그 모를 논에 직접 옮겨 심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 씨앗을 바람에 날리면서 밭에 뿌리거나 나귀 등에 씨앗 자루를 실어 놓고 자루 밑에 구멍을 뚫은 뒤 나귀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은 돌이 너무 많아 경작이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땅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어도 땅속에 돌이나 가시나무 잔뿌리가 많아 파종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씨앗은 길가나 돌밭, 또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씨를 뿌리는 농부는 그저 자신이 뿌린 씨가 좋은 밭에 떨어져 뿌리를 잘 내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씨앗은 누구에게나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배움이 높건 낮건, 시간이 많든 적든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질지 모릅니다. 다만 그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밭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놀라운 능력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서른 배를 넘어 백 배, 아니 그 이상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어떠합니까? [2024년 3월 17일(나해)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4면, 이영제 요셉 신부(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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