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포도나무, 이스라엘의 상징 이스라엘 순례 때 누리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는 가나안의 일곱 토산물 가운데 하나인 만큼(신명 8,8) 성경엔 포도와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나옵니다. “벳 케렘”(예레 6,1)은 ‘포도원의 동네’, 삼손의 연인 들릴라가 살았던 “소렉 골짜기”(판관 16,4)는 ‘검붉은 포도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에인 케렘’은 ‘포도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포도나무는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과실수입니다(예레 2,21; 에제 15장 등). 대홍수 뒤 노아가 경작한 첫 작물이 바로 포도였기에(창세 9,20), 이것이 세상 만민 가운데 하느님의 맏아들(탈출 4,22)인 이스라엘의 상징이 된 건 적절해 보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포도나무 또는 포도원의 주인으로 묘사됩니다(이사 5,1-7; 예레 2,21). 시편 80,9-10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뽑아와 가나안에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노래합니다. 포도는 건포도로 만들거나(1사무 25,18 등) 즙을 끓여 꿀로 만들어 먹었지만, 백미는 단연 포도주였습니다. 그래서 포도 수확철은 흥겨움으로 넘치던 때였는데요(판관 9,27), 두고두고 마실 포도주를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을 터입니다. 하지만 그 열매가 딱딱하고 시큼한 들포도로 변해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 불순종하여 꾸짖음을 들을 때 이런 들포도에 자주 견주어 졌습니다(이사 5,4; 예레 2,21 등). 이런 때는 포도주도 독주로 암시됩니다. 말하자면, 포도주가 제공하는 즐거움 대신 음주의 부작용인 취기(醉氣)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너(예루살렘)의 추잡한 짓과 탕녀 짓이 너에게 이런 일들을 가져왔다. ··· 그것은 질겁과 황폐의 잔, ··· 너는 그 잔을 마셔 비우고서는 그 조각까지 깨물며 네 젖가슴을 쥐어뜯으리라”(에제 23,29-30.33-34). 포도나무의 비유는 이후 요한복음에도 등장합니다. 다만 요한복음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예수님이 포도나무에 비유됩니다(15,5). 그 안에 머물지 않는 가지는 말라서 불태워지지만,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그 나무를 가꾸신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다고 합니다(6.8절). 구약성경에서는 포도나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였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포도나무를 예수님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아마도 집회서에서 영감을 얻은 듯합니다: “내가 친절을 포도 순처럼 틔우니 나의 꽃은 영광스럽고 풍성한 열매가 된다. ··· 나는 내 모든 자녀들에게··· 영원한 것들을 준다. 나에게 오너라, ··· 와서 내 열매를 배불리 먹어라. ··· 나에게 순종하는 이는 수치를 당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리라”(24,17-19.22). 또한 요한복음에서는 포도나무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예수님이 ‘생명나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런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 하신 요한 6,22-59과 일치합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묵상거리를 전해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4월 28일(나해) 부활 제5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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