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높고 우뚝한 산 오늘의 제1독서 에제 17,22-24에서는, 주님께서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시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가 맺히며 그 가지 그늘에 새와 들짐승이 깃들이리라고 전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않은 죄로 주권을 상실하게 되지만(기원전 6세기), 죗값을 치르고서 회개하면 과거보다 더 눈부시게 회복하리라는 희망의 예고였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실의 궁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는 죗값을 치르는 과정일 뿐 종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신탁에서는 오히려 이런 징벌과 회복을 통해 세상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세상 만민, 곧 “들의 모든 나무”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무력하여 그 백성들이 유배 간 게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은 다윗 후손을 상징합니다. 예부터 나무는 왕실과 수장의 상징이었습니다(이사 11,1 등). 1열왕 7,1-3에 따르면, 다윗 왕실은 향백나무로 궁전을 지었기에 향백나무는 왕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예레 22,15). 더 구체적으로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은 제1차 바빌론 유배 때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을 회복시켜 이스라엘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다시 심으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고 우뚝한”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은 예루살렘을 암시합니다(시편 48,2-3; 이사 66,20 등). 예루살렘의 고도는 해발 700-750미터로 이스라엘에서 높은 산지에 속합니다. 이러한 구원과 회복의 예고를 통해, 하느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2사무 7,16; 23,5)을 잊으신 탓에 재앙이 닥친 게 아님을 또한 알려줍니다(시편 89,21-34). 다만 레바논에서 자라는 침엽수 향백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신탁에서는 하느님께서 심으시면 향백나무에도 열매가 맺히는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예고합니다. 이에 대해 옛 유다 전승은 아담과 하와 시대에는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었다고 전합니다. 에제 31,8에 따르면 향백나무는 에덴 동산에서 자란 나무이지만, 원조들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받자(창세 3,17) 생산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창세기 랍바』 5,9). 그러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제2의 종살이, 곧 바빌론 유배에서 구하시는 날, 이스라엘 땅은 에덴 동산처럼 풍요로워지고(에제 36,35)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는 기적을 보여줄 것입니다. 또한 향백나무에 새와 들짐승이 깃들이리라는 말씀으로 다윗 왕실의 번영을 예고하는데요, 성경에서 새와 들짐승은 이민족을 상징하는 소재입니다. 시편 104,16-17에서는 주님의 나무들,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표현으로 세상 만민에게 퍼져나가는 하느님의 은총을 비유합니다. 세상 곳곳에 스며드는 하느님의 사랑은 이제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행보에서 실현됩니다. 예루살렘에 자리한 “높고 우뚝한” 시온산에서는 에제키엘서에 예고된 이런 사랑의 역사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6월 16일(나해) 연중 제11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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