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다시 보기] 문 닫고, 들어온나! “문 닫고, 들어온나” 요즘은 아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참으로 자주 듣던 말이다. 추운 겨울날 바깥에서 놀다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방문을 열려고 하면, 방에 계신 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으레 하시는 말씀이었다. 바람이 차고 추우니까 빨리 들어와서 문을 닫으라는 말씀이다. 따지고 보면 문을 닫고 어찌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들어와서 문을 꼭 닫아야 했다.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강조되는 말이 먼저 나온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어순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요한 1장 18절을 예로 들어보겠다. 1) 희랍어 본문: 하느님을 아무도 아니 보았다 일찍이, 홀로 태어나신 하느님, 그분 그 아버지의 그 품으로 계신 저분이 알려주셨다. 2) 라틴어 번역: 하느님을 아무도 아니 보았다 일찍이, 홀로 태어난 아들, 그는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저분이 알려주셨다. 3) 영어 번역: (King James Version 1611/1769) 아무도 아니 일찍이 보았다 신을, 홀로 태어난 아들, 그는 아버지의 가슴에 가까이 있는 저분이 그분을 알려주셨다. 4) 독어 번역: (Einheitsuebersetzung 1980) 신을 아무도 아니 보았다 일찍이, 그 홀로 태어난 아들, 그는 그 아버지의 그 가슴에 기댄 자, 그분이 알려주셨다. 5) 가톨릭 새 번역: (2005)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 6) 가톨릭 공동 번역: (1977)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7) 개신교 관주 번역: (1961)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8) 개신교 새 변역: (2001)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해 보자. 1) 하느님, 2) 아무도, 3) 일찍이, 세 가지 단어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일찍이”보다, “아무도”보다 “하느님”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관점에서 희랍어 본문이 그 의미를 잘 들어내고 있고, 라틴어 번역과 독어 번역이 희랍어 본문의 어순을 잘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2024년 3월 3일(나해)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8면,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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