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입문] (11) 번역, 해석의 다른 이름 작가 한강의 노벨상 소식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문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에게도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게 된 것은 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수상작이었던 The Vegeterian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본이었습니다. 때문에 작품의 원저자인 한강과 더불어 그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가 맨 부커 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2010년대 이후로 문화계 전방에서 K-Culture(한국문화)의 열풍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데,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 흐름에 박차를 가했던 상징적인 사건이 영화 「기생충」의 흥행이었습니다. 오스카(아카데미) 상 수상 전 이미 골든 글로브 감독상을 받았던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1인치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는 일침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 서비스의 확대(특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에 따른 격리생활 등은 실제로 언어의 장벽 너머로 한국의 문화가 널리 알려지게 된 바탕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도 이러한 언어의 장벽과 번역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분명 성경의 자의적(字意的) 의미는 성경이 최초로 기록된 언어와 그 바탕이 되는 역사, 문화, 사회적 배경 속에서 밝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원초적 출발점이 하느님이시라는 점에서 성경 번역은 해석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더하게 됩니다. 곧, 하느님은 어느 특정 시대와 특정한 지역에 묶여버린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드러나는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시대, 모든 이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성경이 우리를 ‘향해’ 쓰였던 기록이 아니지만 그 글에 담긴 것은 여전히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한 말씀이기 위해 필요한 작업, 구체적인 시대와 장소에서 살아가는 독자와 청중들이 그 의미를 자기 시대의 언어로 이해하도록 필요한 작업이 번역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인간 저자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하실 뿐 아니라, 다양한 번역자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는 최초의 성경이 기록될 때에만 감도 하신 것이 아니라 번역자의 노력에도 같은 성령의 활동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번역은 곧 해석입니다. 성경 안에서도 그 통번역의 실례를 만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본문이 느헤미야 8장의 성대한 초막절 축제 기사입니다: “그들(=레위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느헤 8,8) 또, 집회서의 번역자는 ‘잠도 제대로 못자며 온갖 지식을 다 기울여 번역했지만, 어떤 표현들은 도저히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옮기지 못하는 한계’를 고백하기도 합니다(집회서 머리말 참조). 성경의 원저자, 다양한 언어의 번역자들 만이 성령의 영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퍼즐은 그 말씀과 글을 듣고, 읽는 청중들과 독자들의 몫입니다. 특히, 공동체의 전례 속에서 거행되는 말씀의 선포와 해설은 ‘성령의 성전’(에페 2,20-22)인 교회가 하느님과 소통하는 중요한 체험입니다. 교회는 성체 성사와 더불어 하느님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마태 4,4; 루카 4,4 참조). 성령은 성서의 저자들이 거룩한 책들(성서)을 저술할 때 성서 저자들에게만 단 한 번 역사하신 것이 아니다. 성령은 성서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역사하신다. 오지 성령의 현존만이 단순한 문자를 영으로 변화시키는 보증이 되시며 오직 그분만이 성서 본문에 영원한 젊음을 부여하신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읽는 이를 부추기실 때에만 성서는 결실을 풍부히 맺는 말씀이 된다. - 엔조 비앙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왜관: 분도출판사, 2001 [Torino 21991]) 61. [2024년 11월 3일(나해) 연중 제3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정석 라파엘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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