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서원과 맹세에 대해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하경호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4 조회수4,134 추천수0 신고

하느님 영과 우리의 혼의 대화는 크게 네가지가 있지요.

먼저 우리는 1. 천주존재, 2. 상선벌악, 3. 삼위일체, 4. 강생구속 4대 교리를 믿기에 지금 자체의 서원과 맹세를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봐주실것입니다. 그것을 인성적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1. 주님을 부른다.

2. 주님께서 응답하신다.

3. 주님과 함께 부른다.

4. 주님과 함께 쉰다.

 

오늘 복음 말씀에 "때가 왔으니 나를 따라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에 시몬과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요한은 즉시 아버지 제베데오와 삯꾼들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닌 두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투신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위선이나 계산으로 빠지거나 험한 세상에서 눈뜨고 도둑맞을수 있는 감성이나 이성이 아닌 움직이는 또한 거룩한 침묵으로의 초대였습니다. 

 

주님은 자주 다니시는 그 길에서 제자들을 지켜보시고 때가 이르자 함께 가자 하신것이지요.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알게 모르게 이렇게 할께요. 하는것도 안하는 것보다 좋은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주님 아닌 내생각도 능동적으로 침묵해 나가는 것이지요. 이로서 묵주기도는 성모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의 옹아리 같은 것으로 점점 우리 자기애가 인류애 어머니 맘으로 성장하지요. 하느님과 항상 대화한다는 것은 언제든 때가 이르러 부르실 때 예!하고 함께 갈 수 있도록 전적으로 투신하기 위함인데 시작이자 마침이시며 사랑과 자비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시작과 마침 비참으로 끝날 수 있는 인간의 정치 권력, 전쟁의 참사를 미워하며 사랑과 지혜로 무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인 다수는 성당을 찾게 된 계기가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실 모두가 그럴것입니다. 그 평화 또한 내가 사랑하고 싶은것만 구한다면 유아적 신앙으로 크게 다칠수 있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슬플때나 기쁠때나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 사랑이신 하느님 한 분만을 소유하려는 지금 마음이 소중할것입니다. 이러한 서원과 약속 또한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양속같은 것이기에 때때로 의무감 해치움에 젖는다면 더불어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의 힘으로 자녀 또한 인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초대하는 자신을 더욱 사랑합니다. 그러한 기술력과 타고남과 지성 또한 별빛을 추구하며 라이프를 더 주님께 내어맡기며 지나가면 될 것입니다. 

 

이는 바티칸 어로 라비따(생명)라고 하는데 남성 또한 살아있는 라이브로서 와이프를 돌아보게 되는 삶, 사람, 사람의 귀로로서 여성 또한 성모신심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천국 맛보기를 향유(향하다. 소유하다)할 것입니다.

 

교회법의 율법도 또한 관면을 받아야 된다는 전구도 이슬비에 옷이 젖듯 시나브로 하느님 손 꼭잡고 가는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어른이 됨으로서 순명과 순종을 가까이 하다 보면 열매 맺을 것이고 성사생활을 위한 지금의 준성사 생활을 직시하며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사람의 맹세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불행에 이르거나 사회 불행을 방조할 수 있기에 그것을 습관으로 죄짓는 문제도 흙장난하고 돌아온 어린이가 성모님께 영혼의 옷을 세탁받듯 하느님 엄마 아빠가 존재하는 영혼의 병원인 고해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부 닮아가듯 신부님 침묵을 배려 나무며 내 영혼의 거울을 자주 살펴보는 것 지금처럼 고해 내용을 미리 축약, 즐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성직자들이 왜 휴식중 산책을 즐기는지도 힌트가 될겁니다. 신비와 수덕 가운데 경사보다 조사를 선호하고 즐기게 되는데 고통, 고민, 고심일수록 더 간절한 기도를 바치는 것과 같은 원리일겁니다. 아무튼 봉사는 관리가 아니라 했으니 시대의 독립투사, 녹색 순교(평신자의 순교)자들과 친교하며 그것을 즐기는것도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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