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베드로와 유다 (1) 이번에는 열두 사도 가운데 베드로와 유다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 인물 모두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배반 이후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 자체가 두 인물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요한 6,60-71에는 열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유다의 이름만 나오는데,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유다는 배신자로 지칭됩니다. 먼저,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인데, 예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의미로 케파(바위)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마태 16,18). 베드로는 아람어 케파의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래아 호숫가의 어촌 벳사이다(어부의 집)에서 요나의 아들(시몬 바르요나)로 태어나 어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기혼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아내의 이름은 익명으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교부는 베드로의 아내도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순교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에게는 딸도 하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결혼 후 카파르나움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집은 예수님 활동의 근거지가 되어 예수님의 집으로 불립니다(마르 2,1).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사람 낚는 어부로 예수님께 불림을 받습니다(마태 4,19).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그는 순수하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수제자의 자격이 의심될 정도로 허술하기도 합니다. 바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약하고 겁도 많습니다. 스승은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계시는데 잠을 이기지 못하여 잠들어버리기도 하고(마태 26,40), 물 위를 걸어 예수께로 나아가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마태 14,30). 결국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한편, 복음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유다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출신을 짐작하게 도와줄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카리옷. 이스카리옷은 카리옷 사람(이쉬 카리옷)이라는 의미인데, 카리옷은 여호 15,25에 나오는 크리욧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유다의 아버지 이름 또한 시몬 이스카리옷으로 나옵니다(요한 6,71). 그렇다면 유다는 열두 사도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의 주 활동 지역인 북부 갈릴래아 지방 출신이 아니라 남부 유다 지방 출신입니다. 다만 성경은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부르시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기에, 그가 어떻게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비록 동향 출신이어서 한두 다리 건너면 알만한 관계로 얽혀있었을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을 유다이지만, 그는 예수님 일행의 재정을 담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료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유다를 도둑(요한 12,6)이라 부르는 요한은 그의 배반 이유를 탐욕에서 찾습니다. 그렇지만 고작 은전 30닢(약 4개월 치 임금)의 돈을 배반의 동기로 보는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같은 부유층으로부터도 후원을 받던 예수님 일행의 재정을 담당한 유다는 지속해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착복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6일(다해) 사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베드로와 유다 (2) 유다의 배반 이유와 관련하여, ‘이스카리옷’을 로마인들과 친로마파의 암살도 서슴지 않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인 ‘시카리’와 연결하여, 유다가 시카리의 일원이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유다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바란 것이 아니라, 다만 로마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데 미온적인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마카베오와 같은 정치적 메시아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시카리는 50년경부터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입장에서는 율법을 거스르는 거짓 예언자로 보이는 예수님을 고발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경건한 유다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인데, 유다는 예수님의 참된 율법에 대한 그 많은 가르침을 귓등으로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2~3세기의 외경 유다 복음서는 유다가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을 비로소 육체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육체를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는 감옥으로 보는 영지주의의 관점에서만 선한 일입니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요한 13,2) 이 구절을 근거로 유다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에 조종당하는 도구가 되었다가 결국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고만 희생자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악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하느님조차 거스를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배반 이유를 무엇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배반 행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배반 이후 그의 행동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괴로워하다 결국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는 유다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마르 14,27) 특히 베드로는 작지 않은 배반의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3) 그런데 갈릴래아인 특유 억양의 사투리 때문에 예수님의 일행임이 탄로 난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했습니다(마태 26,70). 비록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주의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마태 26,74).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의 무게를 깨달은 베드로가 대사제의 저택 밖으로 나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8,12) 하지만 ‘후회’한 유다와 달리 베드로는 ‘회개’했습니다. 단순한 후회와 회개는 다릅니다. 후회는 주저앉아 뒤만 돌아보고 있는 것이고, 회개는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보다 큰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가 회개를 가능케 합니다. [2025년 5월 4일(다해)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가톨릭부산 5면, 임성근 판탈레온 신부(사목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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