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성삼일 미사 불참에 대해 고해성사 봐야할까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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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경호 | 작성일2023-04-11 | 조회수1,666 | 추천수0 | 신고 |
성삼일 동안 회사일과 개인 사정들이 겹쳐 저녁미사를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부활성야 또한 집안 행사로 참석하지 못하는 지경이라 마음이 무겁고 죄스럽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후에라도 신자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고해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대죄에 속하지 않으니 이후 주일미사 참례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은 완전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기에 우리의 선행이 도움 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선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모든 부모 마음(이성+영성)이 자녀들의 행복만으로도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계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자매님의 평화와 기쁨이며 우리들은 내리사랑으로 화답합니다. 한편, 고해소 사제 마음은 어떨까요? 그러하신 하느님과 진심을 다하여 죄를 고백하는 자매님으로 하여금 풀어주어 가게 하시는 고해를 위해 중재자로서 임하십니다. 모든 사제의 수호자이신 비안네 신부님과 한국 사제의 수호자 김대건 신부님, 한국의 수호자 성모 마리아님은 한결같이 지속적으로 습관적인 불신앙과 게으름 나태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하십니다. 자매님은 이 오류에 속한다기보다 성찰중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파견될 시는 수호자이신 성모님 태중에서 볼관, 세상세, 소리음 관세음으로 다소 슬픈 노래를 듣고 있으며 성당이신 성모 마리아 태중에서 흘러나오는 공명을 듣고 마음 글썽이고 있는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자매님이 사정상 여의치 못할 때 수호천사가 성당에서 기도해주셨음을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수호천사와 함께 손잡고 하던 일을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이는 성당에서 미사중 집안일 걱정하는 수호천사들과도 유사한 것들로 신부님들은 계속하여 모세의 일계명인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모세의 율법을 폐지가 아닌 완성하러 오셨고 인간적으로 보면 이길 수 없는 적을 쳐부수러 지옥까지 쳐들어간 돈키호테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시어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죽음과 지옥을 쳐 부수시고 죽은 모든 영혼을 되살려 천당으로 초대하시고저 부활하셨습니다. 이 때의 불신앙은 내가 안고 있는 두려움이며 죄의 앙금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으로 주도권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지 못한 두려움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단순히 내 죄를 용서 받고자 하는 고백이라면 그 죄를 떠안을 수 있는 중재자인 사제들도 말 못할 속사정의 하느님도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해소에는 하느님과 중재자(사제) 그리고 자매님(우리) 세 사람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세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는 지금 맘들이 소중합니다. 사실 중재자 입장인 사제로서는 고해소에서의 죄를 위한 죄의 고백들이 가장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흔한 것들이 미사를 궐했다는 단순 고백이니 인간적으로는 지겨울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중재자인 사제로 하여금 온실 속 자녀를 다시 파도 치는 세상과 바다로 내어 보내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용서를 하셨고 앞으로도 용서하실 것인데 그런 자매님의 깊은 엄마로 임하시는 성모 마리아 어머니 마음도 몰라주신다면 얼마나 고독하시고 마음 아프실까요? 자매님은 세상 속에서 가까운 공인의 책무를 열심히 하신 것입니다. 때때로 마음속에 기어들어오는 악마와 마귀들은 갖가지 교란으로 그것들을 혼돈으로 유혹할 것입니다. 이에 영적인 전쟁으로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 제대를 무거운 마음으로 보시며 성주간을 임하신 것입니다. 그 힘을 수호천사가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성당을 많이 오간다고 해서, 열심히 공로를 세운다고 해서 다 이뤄지는 것도 아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부메랑 과정이 소중하기 떼문입니다. 지금의 무거운 마음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나자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르타 마리아가 기도만 한다는 동생 마리아도 일을 시켜달라고 예수님께 말씀 드리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단다"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교형자매도 겸손되고 아름답지만 자매님 또한 기도하는 마리아로 보여짐은 왜일까요? 마리아는 마르타 마리아보다 주도권을 하느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다만 의탁함으로 하느님과 일대일로 하느님 고통을 덜어드릴 일로서 다만 함께하는 것으로 자매님의 무거운 마음을 치유해주실 분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이신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직시하셔야 할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같은 과정의 신앙인들에게 상처 또한 깊이 받을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영감으로 충심을 다하려고 이야기 했는데 다른 사람이 또한 하느님 눈과 입과 귀로 듣지 않고 자아 해석으로 오버하며 간섭하려 들 때 그 혐오감이 나의 평화의 기쁨을 방해하는 교란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햄릿처럼 그냥 가슴에 묻히며 죽어야 할까, 벗이라 여기며 억지로나마 기도할 것이냐의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미 꼰대로 저주를 받고 있기에 하기 싫은 후자도 전자로서 기도하도록 이끌어주시는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와 또 다른 나를 위해 때때로 싫은 기도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제 2천성이라는 습관도 선교보다 중요한 전교하게 될 것이고 또한 전교보다 중요한 선교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깨끗이 비워놓은 마음의 방을 더 쎈 마귀 친구들 데리고 들어오는 자아들을 향해 내리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분은 하느님 한 분 뿜임을 믿으면 됩니다. 성체 현존을 믿는 천주교인으로서 성체를 영하고 하느님의 눈과 입과 귀로서 기도하고자 홀로이 머물고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을 하면 됩니다. 이로써 그래島 사랑하라는 마더 데레사님 말씀도 기억하며 내년 성주간을 새로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성찰, 참회, 정개, 고해, 보속 여정 또한 단순 답습으로 그칠 수 있는 안정 욕구는 더 쎈 소속욕, 겸손욕, 자아욕 극복 고지에 이르러 다시 생리욕에 이은 안정 욕구로 변모 될 것입니다. 이에 내년쯤, 내일쯤 나는 어떻게 변모되어 있는가를 상상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어린이 마음으로 세례 받을 때를 상상하며 더 조건 없이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음으로 닮고 따를 수 있는 나를 감사하십시오. 지금처럼 보시기 아름답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하루의 스케줄 또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알려주시는대로 임하시길 응원합니다. 이 때의 "임하(시)다"는 "기다림"인데, 그리움은 포기가 따르지만 하느님의 기다림은 영원한 기쁨을 낳게 될 것이니 너희의 그 한계 아름다우시다며 원죄의 아담까지 천당으로 이끄시고자 지옥까지 내려가시어 구원하신 예수님 고통을 묵상하시며 세상 모든 죄와 죽음을 쳐부수어 이기신 하느님의 "안심하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을 굳게 믿고 자유인으로싸, 서정인으로써, 신앙인으로써 손에 손잡고 비상하는 봄 날 되시길 축복합니다. 다음은 이 곳 굿뉴스, 태동기부터 평신도 사도직 밀알동호회원 사제로서 한결같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부활 메시지를 자매님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과 우리> 2023. 04. 11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요한 20,11-18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다) 그때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과 우리> 앞서도 앞서지 않고 뒤서도 뒤서지 않으며 높아도 높지 않고 낮아도 낮지 않으며 오롯이 나란히 늘 나란히 곁에서 더불어함께 다시 살아나신 주님과 우리는 형제자매요 벗이라네 앞선 주님 따라 뒤선 우리는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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