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창세기 [Re 484] | 카테고리 | 성경 | ||
---|---|---|---|---|
작성자김호경 | 작성일2001-03-23 | 조회수2,313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
님께서 궁금해 하신 점은 아마 모든 이들이 함께 궁금해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저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이며, 아직 저도 확실한 답을 구하지 못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숙제로 남겨 놓으면서 철학적이나 인간학적 思維가 아닌 성서상에서 공부했던 몇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惡>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한 가지 커다란 의문이 저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면, 과연 악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善이신 하느님에게서 악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 악은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유보하며, 다른 분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면서 나머지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우선 해당되는 성서 구절(창세3,1-7)은 야훼스트계 저자들이 저술한 문헌(J계 문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악에 대한 J계의 입장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J계의 악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악은 인간 실존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신비로서, 결코 해명되지 않는 불투명한 실존이다. - 악의 존재와 기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고, 다만 악을 하나의 현실로 인정하고 있다. 악은 인간의 실존과 더불어 이미 존재한 것이다. - 악의 기원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악에 시달리는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성서의 저자가 이러한 관점에서 이 부분을 썼다면, 여기에서 악의 기원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악을 해명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J계의 입장을 떠나 창세기가 저술되고 편집된 시점의 배경에서도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불행한 시기로 여기고 있는 바빌론 유배 시절에 저술되고 편집된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처절히 성찰하고 반성을 하며, 아울러 희망을 잃고 흩어져가는 자기네 민족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단결하며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던 때입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야훼 신앙을 견고히 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은 자기네가 처한 현재의 불행은 결국 야훼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불충함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불충함은 자기네의 죄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죄로 인한 결과들(악, 고통 등)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악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했는가에 대한 문제보다는(구체적으로 악도 하느님의 창조인가하는 문제) 현재 만연하고 있는 악에 의한 결과에 대해 더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쓰여진 창세기이기 때문에 역시 성서 본문만으로는 악의 기원을 알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성서의 내용으로 본다면 인간의 악, 수치, 고통, 죽음 같이 인간에게 괴로움을 안겨다 주는 것들은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기원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하신 <인간의 자유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당신을 자의로 사랑하여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시고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신을 배반하고 죄를 짓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뜻에 의한 죄의 발생이고, 결과적으로 악이 생겨났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악도 공존케하셨다"는 취지의 서술은 적합한 표현이 아니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인간의 범죄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성서의 이 부분을 읽는데 있어서의 핵심은 죄를 짓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J계 저자들이 사용한 표현들이나 소재들 보다는 인간이 죄를 짓게 된 동기와 그로 인해 빚어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단절에 있으며, 또한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넘치는 자비와 사랑으로써 인간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점, 즉 인간에 대한 처벌의 밑바탕에는 하느님의 인간 구원의지가 깔려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2. 왜 <뱀>의 <유혹>인가?
전제 1 ; <유혹>은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J계 저자들이 사용한 표현상의 기교일 뿐, 핵심 주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범죄에 의한 인간 타락의 초점은 인간 자신이지 <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제 2 ;고대 근동지방에서 뱀은 풍산(다산), 신비스러움, 생명과 죽음의 상징이었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에는 악마의 화신 혹은 대변자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 뱀은 근동 지방과 주변 국가들의 신화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하며, 또 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에서 뱀의 여신인 "부토"는 왕을 보호하는 신이었고, 가나안 지방에서 뱀은 가나안 토착민들의 신인 "바알"의 상징이며 번식력을 상징합니다.
전제 3 ; 고대 근동 국가들은 전쟁을 하면서 승리할 경우 자기네들의 신이 패전 국가의 신을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자기네 신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전제 4 ;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 기간 동안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희망을 부여하기 위하여 야훼 하느님의 우월성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따라서 주변 국가들의 신들을 무시하고 야훼보다는 열등하다는 것을 알려야 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창세기 곳곳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자기들을 지배하고 있는 바빌론이 숭배하는 성신(星辰) 신앙의 대상이 되는 태양이나 달, 별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야훼 하느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전제들을 참고로 하면 왜 뱀을 유혹자로 선택하였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뱀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 근동을 비롯한 고대 동방에서는 뱀에 관한 신화와 숭배 의식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뱀을 유혹자로 선택함으로써 뱀을 무시하고 야훼 하느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느님의 선민으로서 자기네 백성의 우월성을 나타내어 희망을 고취시키기 위함입니다. -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는 뱀 숭배 사상이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의 야훼 신앙에 어떤 위협을 가했으리라 여겨지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뱀을 유혹자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 당시 뱀을 숭배하기도 하였지만 민간의 믿음 중에는 뱀을 가장 간교한 동물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창세 3,1; 마태 10,16 참조). 특히 J계 저자들은 뱀을 신령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단순히 하느님의 피조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간교함의 대표적 상징으로서 뱀을 유혹자로 내세운 것입니다.
왜 뱀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뱀의 유혹을 만드셨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 자신이지 하느님도 아니고 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의 자생성이나 확산성 자체는 인간이 문제이지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