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마태오 복음9장 9절~ 13절까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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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민화 | 작성일2005-07-10 | 조회수3,534 | 추천수4 | 신고 |
마태9:1~8 까지에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예화가 나오는데 이 중풍병자가 마태오가 세리로 있으면서 세금을 받아서 일부는 로마 황제에게 바치고 일부는
세리인 마태오가 차지하고 죄중에 있는 것이 영적으로 중풍병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말씀을 듣고 식사를 하는 것이 마태오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과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죄인들하고 식사를 하신다고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치유할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중풍병자가 율법에 매어있고 원죄가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못가니까.
우리들도 바리사이들 처럼 율법에 매어 있으면 영적인 중풍병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 9:9에서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이 즉 육적인 양식을 먹으면서 영적인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이 죄는 헬라 말로는 하마르티아 즉 원죄를 말하는 것 입니다.
라틴어 에서는 원죄를 페가툼 오리지날에(peccatum originale) 본죄를 페가툼 페르소날레(peccatum personale) 로 되어 있습니다.
성서에서 잔치가 많이 나오는데 마태22;1~14에서는 임금님 아들의 혼인잔치가 나오고
요한복음 2:1~12에서는 가나안 혼인 잔치가 나오는데 묵시록19:1~10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세상에서의 혼인잔치를 통해서 잔치에서 음식을 먹고 신랑신부가 결혼하여 하나가 되는 것처럼
우리들도 신랑이신 어린양인 예수님과 신부들인 성도들이 결혼한 것처럼 하나가 되어 성체가 되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잔치에 세리들이나 사도들을 초청 하여 예수님께서는 성서에서 자주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9:12 에서는 환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고 죄인에게는 영적인 원죄를 사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하시다는 것입니다.
자비도 육적인 자비는 음식 옷 집등이 필요하시는 분들께 해드리는 것(마태복음25:31~41)입니다.
토비트서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장사를 지내 주는 것이 육적인 자비이지만 영적인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것이 자비 받는 것 이고 전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 입니다.
또 루가복음10:29~37을 보시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오는데 율법에 있는 사제들은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죽음이고 생명이 없는 더러운 피를 만지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자비를 베푸지 못하고
레위인들도 거룩한 제물을 성전에서 준비를 하는데 피를 만지면 안된다는 율법 때문에 생명을 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못하는 잘못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생각을 했던 사마리아인이 이 강도맞아 반쯤 죽어갔던 사람을 사랑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을 예화로 들어 주시고
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비유로써 설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차원에서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음식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옷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 방문하고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을 찾아뵙는 것이 육적이고 율법차원의 자비이지만
영차원에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자비이기 때문에 공관복음 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자비이고
요한 복음차원에서는 말씀의 하느님 하느님의 말씀을 영으로 풀어주어서 영으로 깨달아서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자비받는 것이고
요한 복음과 묵시록 즉 계시차원에서는 하느님이 열매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의 열매이며 예수님이 요한복음차원에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의 열매 (갈라디아서5:22~23) 이기 때문에 내가 만난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해드리는 것이 자비입니다.
자비를 베푸시는 것도 성경의 차원에 따라 육적인 자비인가 영적인 자비인가를 생각해야 하나 저의 경우는 육적인 자비와 영적인 자비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마태9:14~38을 보시면 마태9:14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설명하시고 즉 단식은 육적인 음식을 굶은 것이 육적인 단식이나
영적인 단식은 육적인 음식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먹는 것이 영적인 단식입니다.
이사야서58장에서도 참된 단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단식에 대한 예화로서 하혈병환자를 치유하시고 야히로의 죽은 딸을 치유하시면서 이렇게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치유 받는 것이 영적으로 단식을 하고 난치의 병을 치유받는 것으로 비유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는 비유복음입니다. 이런 치료 불가능한 환자를 치유하시는 분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며 영적인 죄를 사해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죄를 치유받는 것이 영적인 단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즉 율법에 매어 있는 사람들을 영적인 중풍병자 라고 하시면서
율법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인 나 한테로 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서 예화를 들어주시고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을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사 성제 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들은 죄의 결과를 보시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의 원인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 죄인들이지만 빛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에 매어 있지 말고 복음인 예수님께로 와서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례를 받고 원죄를 사함은 받았지만 선악과의 열매의 여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을 외모나 행위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봉사를 하는데 너는 봉사를 하지 않는다. 너는 예쁘고 누구는 예쁘지 않다. 잘 한다 못 한다 착하다 악하다.깨끗하다. 더럽다. 하고 판단을 잘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죄가 없으시니까 세리나. 나병환자나 중풍병자나,수종병자나 창녀나 어떤 환자들을 보실 때나 더럽다. 깨끗하다. 잘한다. 못한다.하고 하시지 않으시고 바리새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있으니까
예수님이 죄인으로 취급한 세리들하고 식사를 한다고 판단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둠에 있는 세리들과 창녀들도 빛이시고 생명이신 나(예수님)한테 왔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가끔 나의 잘못은 못보고 남의 잘못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잘 못이 있어도 예수님만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성경을 육안으로 보고 문자에 매어 있으면 사랑.기쁨.평화. 인내 친절.진실.온유.절제.겸손등이 오지 않고 성경 안에 있는 영적인 뜻을 깨닫고 영안이 열리는 것이 영적인 소경이 아니고 보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14;9 필립보가 예수님께 하느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하느님)를 보는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은 육안 으로 예수님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기쁨으로 평화의 눈으로 하느님의 형상(성품)을 성령의 열매로 보는 것이 보는 사람이고
시기, 질투 ,미움 ,교만 ,등의 육의 열매 (갈라디아서5:19)로 보는 것은 못 보는 것이고 영적인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서를 많이 읽으시고 성서 안에 있는 문자의 뜻도 아시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문자 안에 있는 영적인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묵상하시는 것이 저의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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