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다 (2) | 카테고리 | 성경 | ||
---|---|---|---|---|
작성자허선 | 작성일2006-12-15 | 조회수620 | 추천수0 | 신고 |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다 (2) - 성서에 기초한 상세 고찰 | 마리아신학 2004.10.18 18:55 대건(daegun78) http://cafe.naver.com/cakorea/39 시인 워즈워드는 성모 마리아를 "모성의 사랑과 동정의 순결을 한몸에 결합하셨다."라는 적절한 말로 칭송하였다.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다. 결혼 전과 결혼 생활을 지나 남편 요셉이 죽은 뒤까지 온전히 동정의 순결을 보전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가 1, 26-27)라는 이 기록대로 이다. 마리아께서 예수를 낳으시기까지 동정녀로 계셨다는 사실은 복음 성서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며(마태 1, 25) 그 후에도 계속하여 동정녀이시었음은 명백하다. 사도 신경과 니체아 신경에도 마리아를 ’동정녀’라 불렀다. 결코 구세주 탄생 때까지만이 아니다. 이 두 신경의 ’동정녀’라는 말의 뜻은 결코 그렇게 해석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참으로 평생 동정이 시다. 이 두 신경은 모두 성모 마리아께서 돌아가신 뒤에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의 미사 경문은 사도 시대로부터 전래된 것인데, 여기에는 성모마리아를 ’영광의 평생 동정녀’라 하였다. 이는 참으로 성모께 대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관념이다. 예수 탄생 후에도 마리아는 그냥 동정녀이심을 우리는 확신한다. 가톨릭신자가 아닌 이들도 이를 믿고 따르는 이가 많다. 영국 감독 교회의 불(Bull) 감독은 "하느님의 궁전이 되기 위하여 한번 성별되었던 그릇(성모의 육신)이, 후에 인간 사욕(邪慾)의 그릇으로 더럽혀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부당한 일이다."라고 하였으며, 그로티우스(Grotius), 칼빈(Calvin) 등 프로테스탄트 창시자들도 같은 의견을 발표하였다. 마리아 평생 동정 교리에 대하여 4세기의 이단자 헬비디우스(Helvidius)와 요비니안(Jovinian)과 같이 오늘날에도 프로테스탄트교인 중에 이를 불신하는 이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복음 성서에 기록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마태 1, 25)라는 말로, 그들은 예수 외에도 마리아에게서 다른 자녀들이 태어난 것으로 추측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까지’ 라는 한정사는 결코 마리아와 그 남편 요셉과의 정결한 동거 상태가 예수 탄생 때까지만 계속되고 그 후에는 변경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사야 예언자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이사 7,14)라고 한 예언이 적중되었음을 명시하였을 뿐이다. 프로테스탄트의 후커(Hooker)도, 마태오 복음의 이 ’까지’를 곡해하는 자가 있어 성모 마리아의 존엄성을 욕되게 하려는 점에 통탄하여 "어떠한 일이 어떤 사건이 발생될 때까지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함은 결코 그 사건이 발생된 후에는 필연적으로 그 일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Book V., ch. XIV) 라고 하였다. 성서에는 이러한 예가 많이 있다. 노아 홍수 때에 "까마귀는 땅에서 물이다 마를 때까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창세 8, 7)라고 하였다. 이는 물론 그 까마귀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2사무 6, 23)라는 것은 미갈이 죽은 뒤에도 물론 자식을 두지 못한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시편 109; 마르 12, 36)라는 말씀은 주 예수께 대한 말씀인데, 이는 예수께서는 그 원수들을 정복하신 뒤에도 늘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마르 5, 13-14;마태 28,20;1,25 참조). 2) 또 예수를 마리아의 맏아들이라고 했으니, 마리아가 다른 자녀를 낳은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부인이 ’첫아기’를 낳고 죽었다든가, 과부가 되었다는 말을 우리는 가끔 듣는다. 그렇다고 반드시 과부 된 다음 다른 아이를 낳았다 할 수가 없고, 죽은 다음 둘째 셋째 아이를 낳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당시 유다 풍속에는 처음 태어난 아들은,그 후 다른 자녀가 있든지 없든지 ’맏아들’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맏아들에게는 특별한 권리가 있고 또 맏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법이 있었으므로(출애 13, 2; 34, 19 참조). 성모 마리아도 그 법을 따라 예수 아기를 주께 봉헌하셨다.(루가 2, 21 참조). 외아들이라는 말보다 ’맏아들’이란 말이 더 적당한 법률적 용어가 되었었다. 그러므로 므나쎄의 아들 마길도 독자였지만 마길은 "므나쎄의 맏아들이자…" (여호 17, 1)라고 하여 ’맏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 예수는 그 천주성으로 성부의 ’독생 성자’, 즉 외아들이시지만(요한 1, 14-18 참조) 역시 ’맏아들’이라 불렀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히브 1,6)라고 하였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이 택하신 백성은 이스라엘뿐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출애 4, 22)라고 하셨다. 3) 성서에 ’예수의 형제’라는 말이 있으므로 (마태 12, 46 ;13, 55; 마르 6,3; 요한 2, 12 ;7, 3-5; 사도 1, 14; 갈라 1, 19; 1고린 9, 5 참조) 예수 외에 성모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성서를 좀 더 신중히 읽어 본다면 예수의 형제라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은 성모 마리아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다른 마리아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알면 곧 이해될 수 있는 사실이다. 성 마태오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 중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마태27, 56)라고 하였고, 성 마르코는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르 15, 40)라고 하였다. 이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아님은 성 요한복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한 19, 2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셋이나 있었다. 즉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이다. 글레오파는 또한 알패오라고도 불리는 사람인데, 이는 마치 마태오가 레비로 불리고,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오로로 불리는 경우와 같다. 그런데 예수의 아우라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태 10, 3; 마르3, 18; 루가 6, 15 참조) 요, 타대오는 야고보의 아우이므로(루가 6, 16; 사도 1, 13 참조) 이 야고보 형제의 아버지는 성 요셉이 아니라 알패오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고 다른 마리아, 즉 알패오라고 하는 글레오파의 아내인 마리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마리아가 예수 어머니의 동생인즉(요한 19, 25 참조) 예수와 야고보 타대오 등은 사촌 형제임을 알 수 있다. 반대자의 말대로 성서의 "예수의 형제"가 모두 예수의 친형제라면 예수를 믿는 야고보 요셉 타대오 시몬 외에 또 누이들이 있고(마르 6, 3 참조) 또 예수를 믿지 않는 형제들도 있다(요한 7, 5 참조). 그렇다면 겨우 서른이 지난 맏아들에게 장성한 형제자매들이 이렇게도 많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우며 아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어머니를 요한 사도에게 맡기시며 너의 어머니 받들 듯이 받들라고 유언하신 것을 보아도(요한 19, 26 참조) 예수에게는 친형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 사도 요셉 타대오 사도 시몬 등이 친형제라면, 어찌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겠는가. (한국에도 4촌 6촌 8촌 고종 이종끼리 서로 ‘형님’ ‘동생’하는 칭호를 쓴다. 이를 보고 즉시 친형제 사이라고 속단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한국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유럽, 미국인들은 ’형제’를 이상히 여길지도 모르나 한국인에게는 무난히 통과되는 말이다.) 성서에도 이런 예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엘르아잘은 아들은 없이 딸만 남겨 두고 죽었다. 그의 조카인 키스의 아들들이 그의 딸들에게 장가들었다." (1역대 23, 22)라는 기록이 역시 ’4촌 오빠’를 ’형제’라 부른 한 예이다. 성서에는 이 ’형제’가 넓은 의미의 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친척을 형제라 부르기도 하고(욥기 19, 13 참조) 숙질간, 당숙·당질간, 외숙·생질 간에도 ’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저마다 들고 있는 향로에 불을 담고… 불이 나와 그들을 삼키자… 죽었다. 이것을 보고 모세는 아론의 삼촌 우찌엘의 두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놓고 ’어서 가서 너의 형제들을 성소에서 진지 밖으로 끌어내어라’하고 일렀다."(레위 10, 4)라고 하였다. 이는 ’조카’를 ’형제’라고 부른 예다. 아브람의 조카가 롯임은 분명한데(창세 11, 27-31 참조) 아브람은 롯에게 "너와 나는 한 형제가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창세 13, 8)라고 하였다. "아브람이 적군을 무찌른 뒤 형제(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자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되찾아냈다."(창세 14, 16)라고 한 것은 삼촌과 조카를 ’형제’라 부른 예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라헬의 아버지가 자기 외삼촌이며 자기 어머니가 리브가라고 말하자…" (창세 29, 12)라고 한 것은 외삼촌과 조카를 ’형제’라고 부른 예이다. (한국어판 프로테스탄트 성서에는 이를 모두 ‘골육’, ‘친족’, ‘조카’, ‘생질’이라고 옮겼다. 그러나 원전에는 다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이웃 사람(창세 19, 7), 신앙의 동무(사도 10, 17; 야고 1, 16; 필레 7, 16. 20), 동포(마태 5, 22; 18, 15)를 ’형제’라고 불렀다. 성모께서 평생 동정이심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거는 1천 6백여년전 이단자 헬비디우스와 요비니안이 그랬던 것처럼 ’맏아들’, ‘까지’, ‘형제’ 뿐이다. 늘 성서 성서 하는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의 이 박약한 논거는 도리어 성서의 역습을 당하여 산산이 분쇄되어 피라미드 속의 미이라처럼 박물관에나 전시될 유물인 것이다.) 이제 가톨릭교회의 심오한 교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성 마리아와 성 요셉과의 혼인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려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동정 생활을 매우 귀하게 평가한다. 오늘날엔 동정 생활을 하려는 자들은 수도회로 들어가면 되지만, 수도회도 없고 주위 환경도 험난한 그때에 동정생활을 알뜰히 하려면 남녀 동지끼리 이른바 ’동정 부부’로서 동거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도 동정 부부의 예가 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 이루갈다(1802년 1월 31일 순교)와 유종선 베드로(1801년 11월 14일 순교)가 동정 부부였다.) 그 시대 그 환경에서는 나이든 처녀의 동정 생활은 매우 위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뜻을 같이 한 남자와 혼인하여 동정을 지키며 동거 생활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의 관계도 이런 동정 동거 생활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생아 대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성모 마리아가 부정한 여자로 몰리어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또 가정생활의 안전한 보호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성 요셉이 아니었다면 호적을 위한 예루살렘 행, 이집트 피난, 몹시 가난한 생활 등 모든 난관을 성모 마리아 혼자로서는 도저히 이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쨋든 성 마리아는 평생을 동정을 지키기로 하느님께 이미 맹세하였다. 이는 성 아우구스티노, 성 그레고리오 니싸, 성 베다, 성 베르나르도, 성 안셀모 등 교회의 쟁쟁한 학자들이 일치되어 말하는 바다. 이는 가브리엘천사가 구세주의 탄생을 예고할 때, 이미 성 요셉과 약혼한 성 마리아는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가 1, 34)라고 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만일 자식 낳을 목적으로 하는 평범한 혼인이라면, 더구나 이미 약혼까지 한 여자로서 어떻게 "이 몸은 처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아들을 낳는다는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놀랄 수 있겠는가. 어느 모로 보든지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을 지킬 수밖에 없으셨다. 성부의 최상 최대의 사업, 즉 성자를 낳고 기르는 거룩한 일을 맡길 여자는 가장 완전한, "은총을 가득히 받은 …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된 이"(루가 1, 28) 라야 함은 매우 당연하다. 만일 성 마리아가 반대자의 말처럼, 그 후 평범한 여자로 돌아갔다 하자.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이를 미리 모르셨을 리 없고 아시고서도 당신 아들의 어머니로 택하셨을 리도 없다. 우리도 어느 성덕 높은 이를 의형(義兄)으로 삼으려 할 때 만일 그가 머지않아 범부(凡夫)로 전락할 것을 안다면 아예 결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하느님의 아들에게 야고보 요셉 타대오 등 혈육의 형제자매가 있다 치자. 이는 곧 하느님의 외아들의 존엄을 모독하는 것이요, 또 성령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감싸" (루가 1, 35) 정결을 보전하여 주신 마리아의 속화(俗化, 속화된다 치면 말이다.)를 방관만 하셨을 리 만무하다.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엄숙히 동정을 밝히신 성모 마리아로서는 허원(許願)한 그 동정을 파기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보전된 그 동정을 헌신처럼 버리셨을 리도 만무하다. "법대로 사는 사람"(마태 1, 19)이요, 또 하느님의 아들이 성모 마리아의 혈육으로 탄생하실 것을 아는 성 요셉은 ’모성의 사랑과 동정의 순결’을 항구히 보전하기에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제나디우스는 성모 평생 동정의 부인은 ’광신이요 모독’이라 하였고, 성 암브로시오는 이를 ’독성’이라 하여 대죄로 규정하였다.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초대 교회로부터 일치하여 인정되어 오는 바다. 이미 4세기에 성 에피파니오는 말하기를 "어느 시대이든지 누가 자원하여 마리아라는 이름에 ’동정’이란 말을 함께 부르지 않는 자가 있었느냐….’동정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은 불변의 이름이다. 성모는 영원히 동정으로 계셨다."라고 하였다. 성 야고보 사도로부터 전하여 오는 기도문에는 "우리 지극히 영화로우신 평생 동정이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고 쓰여있다. (Bibliotheca Max. Patrum, t.2. p.3). - 제임스 C. 기본스 추기경의 저서 ’교부들의 신앙’ 중에서 -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