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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에델 퀸은 레지오마리애와 어떤관계인가요? - 참고자료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0 조회수1,085 추천수0 신고

naver.com에서 검색해서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에델 퀸과 그분의 영적 생활의 비밀


2007년에 우리는 가경자 에델 퀸의 탄생 백주년을 축하하게 됩니다. 이때에 우리는 레지오 마리애와 보편적인 교회, 그리고 근대의 세상을 위한 그분의 생활이 가지는 중대한 의미를 되새겨볼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레지오는 무엇보다 그분에게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분은 첫 번째 쁘레시디움 주회를 마치고 나서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중에 건강이 좋지 않아 그녀의 간절한 소망인 관상수도회의 수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렇다고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물론 레지오에서 우연한 일이란 있을 수 없고 모두 하느님의 신비한 섭리이지만, 그녀는 새로이 사귀게 된 친구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나 티에니라는 친구가 그 초대한 날이 자기의 레지오 마리애 주회날이라 가지 못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델 퀸은 레지오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대화 끝에 그러면 한번 와서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영적이고 사도적인 생활의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전기가 된 것입니다. 에델 퀸은 여기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간절히 소망하였던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새로운 레지오 단원을 위한 교본에서 ‘레지오에 가입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에델 퀸이 레지오에 가입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에델 퀸에게는 레지오야말로 하느님의 귀중한 선물이었음을 확신합니다. 프랭크 더프나 레지오를 위해 큰 일을 하신 많은 다른 분들처럼 에델 퀸의 영적 생활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적인 생활이 레지오 전체에 골고루 미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지오의 정신, 특히 교본에 쓰여진 정신을 앎으로써 바로 그분의 영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훈화를 할 때 무엇을 해보라고 지시를 잘 하지 않습니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숙제를 내보겠습니다. 제가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쓰신 개인 일기에서 중요한 한 구절을 읽어보겠는데, 교본에서 여러분이 같은 내용의 글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 시도해 보십시오. 이글을 잘 읽어 보면 그분의 영적인 생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또한 여러분의 영적인 생활에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는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 수난의 성 목요일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성모님은 오늘 하루 온종일 내 안에서 예수님의 모든 상처들을 쓰다듬으시고, 측은히 여기면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모님은 주님께는 성체에 대하여, 영원한 생명의 아버지께는 이러한 선물을 마련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만약에 성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이 선물에 대하여는 삼위일체께 아무리 거듭해서 감사를 드린다고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성체 안에 머무르시도록 해야겠습니다. 제자들도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묻고, 그들은 바로 그날 하루종일 주님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목마른 갈증으로 주님과 함께 머물러 계십시오. 성모님께서도 사랑하고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이는 마치 아기가 정신이 없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분의 현존하심에 감사하면서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세상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공경 안에서 성모님을 통해 삼위일체께 그 분을 드러내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바쳐 주님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체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거기서 주님을 찾도록 온힘을 다합시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엔가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가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체대에서 매 순간마다 그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신비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본다고 하여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에델 퀸이 쓴 것과 우리가 교본에서 찾은 것이 똑같은 단어와 문장의 표현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체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보면서 그분의 영적 생활의 비밀 중 중요한 한 가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체에 대한 사랑은 우리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지녀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지난 한 세기 동안 하느님이 에델 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감사하며 그분의 영적인 삶의 다른 비밀도 더욱 밝혀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Bede McGregor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자





[월간 레지오마리애] 에델 퀸과 그녀 안에 깃든 성삼위 |

레지오 훈화자료  2007.03.14 20:19 

마르티노(kmartin1214)   http://cafe.naver.com/manmincu/5234 

 

[에델 퀸과 그녀 안에 깃든 성삼위]


에델 퀸의 시복청원자로 참여하신 안셀름 모이니한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영성체의 기회를 빼앗긴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견디기 힘든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톨릭 계통이 아닌 요양소에 환자로 수용되었을 때에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는 성체를 모실 수 없었는데, 나중에 ‘그때 매일 성체를 모시는 기회를 빼앗긴 것은 정말로 지옥에 갔다온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녀는 또 ‘만일 성체가 없다면 얼마나 황량한 생이 될 것인가… 이렇게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성삼위께 거듭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체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레지오 영성이라는 왕관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입니다. 그 사랑은 레지오의 쁘레또리움과 아듀또리움 단원들 안에 특별한 방법으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상급 단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마도 성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실히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에델 퀸의 영적 생활의 다른 면, 다시 말해 그녀의 정신 속에 은총을 통하여 계시는 성삼위를 간단히 묵상해 보겠습니다. 에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아일랜드의 카루트지오 수녀회의 한 수녀는 베르나르도 신부님이 쓰신 「성체에서 성삼위까지」라는 소책자를 거듭해서 읽으며 묵상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성체는 우리 정신 안에 깃든 성삼위의 신비를 직접 삶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으로 에델은 이 위대한 법칙을 이론으로뿐 아니라 매일의 실천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가 좋아했던 저자들 중에서 또 한 사람이 성삼위 은총의 엘리사벳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은총을 통하여 우리 존재의 저 깊은 곳에서 우리와 엄청나게 절친하다는 신비스러움에 관하여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분들이 있는데, 엘리사벳도 그 중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물론 에델에게도 성삼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과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둘의 차이는, 우리 안에 있는 성삼위의 신비는 믿음으로 느낄 수 있고, 천국이 있음은 직접적인 축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것을 이해하면, 왜 에델이 그토록 긴 시간을 침묵과 명상으로 갈망하였는지를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시복을 위한 청문회에서 여러 증인들은 ‘그녀의 열성적인 사도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영적인 명상이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에델은 그녀의 작은 묵상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성삼위를 공경하며, 성모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이신 주님 안에서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은총을 갈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우리의 모든 명예와 보상과 거룩함을 바쳐 하루 온종일 자주 그분을 우리의 정신 안에 살아계시는 성삼위께 봉헌하십시오.”


“우리 몸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성삼위가 머무르시는 성소라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성삼위를 공경합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곤란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 정신 안에 깃든 성삼위를 공경하십시오.”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성삼위를 공경합시다. 쓸모없는 걱정거리랑 전부 던져버리고… 예수님을 공경하고 하나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의 정신 안에 깃든 성삼위와 함께, 성모님을 통하여.”


에델 퀸에게는 삼위일체의 논리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고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믿음으로 부담없이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녀에게 성삼위는 완전히 살아있고 힘이 넘치며 활력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성삼위를 자신의 실제의 생활에, 그리고 기도에, 일에,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태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_맥그리거 신부/ 강용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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