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비금속 : 탄소 - 숯
탄소가 숯과 매연(soot)으로서 선사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던 것은 확실하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석탄’(coal)이라는 말이 숯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것은 팔레스타인에는 석탄 광상이 없기 때문이다. "숯불에 숯을 넣고, 타는 불에 나무를 던지듯 말썽꾸러기는 싸움에 부채질만 한다." "As coals are to burning coals, and wood to fire, so is a contentious man to kindle strife".(잠언 26,21)라는 잠언에서 명백하다.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설교하는데 이사야(기원전 8세기 중엽)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이글이글 타는 장작불(숯불 위에, upon the coals)에 빵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자. 남은 토막으로는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나무토막 앞에 엎드리자." 하고 말하는 생각도 없고 지각도 없 철도 없는 것들"(이사 44,19).
잠언의 어느 한 구절에, 악에 대하여 선으로 갚는 것에서 생기는 회한을 나타내는데 "원수의 머리 위에 모닥불을 피운다."(heaping coals of fire on an enemy''s head)라는 비유적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주어라. 그것은 그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워주는 셈이니, 야훼께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은 것과 일반이요)(잠언 25,21-22). 원수가 궁핍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선행과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숯불''은 ''회개의 표시'', ''마음의 불'', ''회개와 부끄러움의 가책으로 타는 듯한 고통'', ''은혜'', 즉 궁극적으로 은혜를 가져오는 ''후회와 부끄러움에서 오는 고통'' 등으로 해석한다. 대체로 숯불을 쌓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한다. 은혜를 베풂으로써 원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키게 되어 서로에게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유대 사회와 아랍 사회에서 흔히 쓰였다. 바오로(Paul)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 교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 교훈에 따를 것을 그들에게 간청하였다(로마 12,20).
베드로는 그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부인하였을 때, 죄의식으로 추위를 느꼈다. "날이 추워서 하인들과 경비병들은 숯불을 피워 놓고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틈에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요한 18, 18). 과월절은 양력으로 3, 4월경이므로 밤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특별하여 대사제의 하인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마당에 불을 피워 쬐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서 불을 쬐는 자리는 몸을 숨기고 추위를 피하는 데에도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서에서 티베리아(Tiberias)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베드로 일행의 그물에 많은 고기를 들게 하는 예수의 기적이 서술되어 있고, 이어서 "그들이 육지에 올라 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요한 21,9). 제자들이 배를 뭍에 대고 예수에게로 왔을 때 거기에는 제자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장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수가 이미 제자들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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