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시편의 분류에 관하여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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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수근 | 작성일2007-09-11 | 조회수1,014 | 추천수0 | 신고 | |
+ 찬미 예수님. 성경에 맛들이시고 그 감동을 이렇게 나누며 인사 전할 수 있게 되어 반가웁고 기쁩니다. 굿뉴스 첫 페이지 성경 카테고리를 보시면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이렇게 전해드립니다. 참고 하시고 성경방에서 자주 뵙기를....^^ 저는 답변을 원하시는 신부님은 아닙니다.만 반가움에 드리는 인사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시편이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생겼나요? 유다인들이 처음에 시편을 부른 이름은 ‘기도(트필롯)’였어요. 그러다 후대에 가서는 ‘찬양(트힐림)’ 또는 ‘찬양의 책’이라 불렀어요. 구약성서에서 찬양하라는 동사(hll)의 2/3 이상이 시편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아무튼 기도와 찬양은 시편의 두 측면이죠. 그리스어 성서는 시편이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그리스어 psallo)” 것이라 하여 ‘프살모이(psalmoi, 찬미가)’라 불렀어요. 시편의 영어 이름(psalms)도 여기서 연유하였죠. 우리 말 성서 이름 ‘시편’은 시모음집이라는 뜻의 중국어 성서 이름 ‘시편(詩篇)’을 딴 것이구요. 누가 썼나요? 시편 이외에도 성서에 나오는 노래는 적지 않아요. 이런 노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었기 때문에, 원작가를 밝히기가 쉽지 않아요. 시편에도 첫머리에 다윗, 아삽, 코라의 후손, 모세 등의 작품이라고 나와 있으나, 이들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시편은 사실상 하느님 백성 전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다윗은 음악을 즐기고 시와 노래로 하느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린 대표적인 인물이기에, 자연스럽게 시편의 대부분을 그의 작품으로 여기게 된 것이죠. 언제 쓰여졌나요? 시편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었어요. 아마도 대부분은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황금시기인 기원전 10세기와 가장 어려웠던 시대인 바빌론 포로기 전후에 생겨났을 거에요. 이런저런 시들이 한데 모아져 현재와 비슷한 꼴로 형성된 것은 대략 기원전 2세기경으로 여겨져요. 그때 모세오경을 모방해서 시편을 다섯 권(시편 1-41; 42-72; 73-89; 90-106; 107-150)으로 나누었을 거에요.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가리켜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과 시편들”(루가 24,44)이라 했어요. 즉 시편은 그 때까지도 완결되지 못한 성문서를 대표하는 성서로 꼽힌 것이지요. 왜 썼나요? 예나 지금이나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두루 애송하는 성서는 아마도 시편일 거예요.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고 어려운 처지에서는 구원을 탄원해 왔기 때문이죠. 비단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가 드리는 전례에서도 시편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죠. 시편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응답의 성서’라고 할 수 있어요. 오경 전체가 하느님이 하신 큰일을 전하고 예언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면, 시편은 하느님의 그 일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느님이 하신 큰일들을 체험한 이들은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 백성을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아니 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주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사는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우리와 함께 해주시며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을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시편 19,14)라 고백해 왔던 것입니다. <나눔과 새김> 마음에 드는 시편 하나를 암송하시고 자주 되새겨 보십시오. 그 시편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바꿔 서로 나눠 보십시오. 인간이 무엇이기에(시편 8편) 시편을 읽는 방법 먼저 시편은 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아야기식 성서처럼 그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자주 읽으면서(가능하면 외우면서) 단어와 구절에 함축된 깊은 뜻을 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그 시편 저자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느끼고 공감하며 더불어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 시편은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 나아가 신약성서를 포괄하는 성서 전체의 맥락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시편 한 구절, 또는 한 편을 이해하려면 시편 전체의 흐름과 함께 성서가 대변하는 이스라엘의 신앙 맥락과 연관시켜 보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훼는 나의 목자”(시편 23,1)란 구절만 보더라도,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이 성서에서 드러내는 깊은 뜻과 그에 대한 다양한 신앙고백이 갈무리되어 있습니다. 또 ‘목자’라는 말 속에는 자신이 양이라는 고백과 함께, 목축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의 생활양식은 물론 거기서 비롯된 목자와 양의 실질적 관계, 이 관계를 유비시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간의 관계를 가리켰던 다른 성서 표현 등이 다 담겨 있지요. 시편의 분류와 감상 시편은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크게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그밖의 시로 나뉩니다. 여기서도 그렇게 몇 가지로 나눠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1. 찬양시 유일하신 절대자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을 기리고 찬양하는 시편들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권유로 시작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나열한 다음, 다시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짧은 축복문 및 기도문으로 마무리하는 꼴로 짜여 있습니다. 대개 시편 8; 19; 29; 33; 67; 95-100; 103-106; 111; 113-114; 134; 136; 145-150편 등을 찬양시로 봅니다. 일례로 시편 8편을 감상하겠습니다.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시편 저자는 왜 하느님을 찬양합니까?(8,3-6) 시의 첫머리와 끝머리에서 시인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기립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나 크고 고맙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중심이 되는 하느님의 업적은 창조사업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나타나는 창조 업적이 시인의 입을 빌어 다시금 묘사됩니다. 도대체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당신 창조의 중심에 놓으시고 뭇 만물을 돌보게 하셨는지, 시인은 다만 감격하여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본래부터 그럴 만한 자격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 시편을 빌어 예수님을 노래합니다(히브 2,6-9). 이 시편에 나오는 인간상이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던 것이죠. 여하튼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새삼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와 사명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득이나 생태계의 위기를 느끼는 이 시대에, 이 짧은 시편의 울림은 크게 크게 번져 갑니다.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노래하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시편 22편) 2. 탄원시 박해를 받거나 죽음이나 질병 같은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하는 내용이지요. 시인은 먼저 자신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뒤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합니다. 이어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하느님께 구원을 간청합니다. 이러한 탄원은 한 개인이 드리기도 했고,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와 예루살렘의 파괴 같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집단적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 유형이 시편에서 가장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탄원시는 시편 3; 5; 22; 25; 28; 44; 60; 74; 78-80; 83; 85; 90; 94; 102; 123; 137편 등입니다.한 예로 시편 22편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시인은 하느님을 ‘나의 무엇’이라고 부릅니까?(22,19) 이 시편은 울부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울부짖는 소리가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다가, 구원자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마감됩니다. 지금 “뼈 마디마디 드러나 셀 수 있는” 처지에 빠진 이 시인이 겪고 있는 곤경과 어려움은 몹시 심각합니다. 그런 처지에서도 시인은 끝끝내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구원을 맡겨 드립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태 27,46)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감사시 하느님께서 베푸신 구원행위의 위대함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내용입니다. 시작은 찬양시와 비슷한데, 본문에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나열하면서 하느님께 영원히 찬미를 드리겠다는 약속과 지속적인 신뢰심을 표현한 다음, 끊임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함을 공동체에 권유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끝맺고 있어요. 감사시에도 부분적으로는 탄원과 찬양의 내용이 들어 있어요.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어울려 다니거든요. 대표적인 감사시인 시편 18; 30; 32; 34; 40; 66; 92; 116; 118; 124; 129; 138편 등에서 18편을 살펴 보겠습니다. 야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 18편) * 시인이 하느님을 “나의 무엇”이라고 부른 열한 가지 표현을 찾아 보십시오(18,1-2. 28). 시인은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이 베푸신 구원행위를 나열합니다. 하느님은 그를 “원수의 손에서”(3,17절), “거센 물 속에서 건져 주시고”(16절), “어깨를 펴게 해 주시고”(19절), “상을 내리시고”(20절), “붙들어 주시고”(26절), “적대자들 위에 높여 주셨습니다”(48절). 그렇기에 시인은 “그 고마움을 어찌 만민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지 않으리이까?”(49절)하며 토로합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하느님은 “하늘을 밀어 제치시는”(9절) 자연의 주재자이시고, “옳게 살았다고 상을 내리시는”(20절)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시인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인간이나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뿐이시며(31절), “한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마음으로 위해 주신다”(25절)고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사무엘 하권 22장에서 다윗의 노래로 나올 만큼 오래 된 노래입니다. 복되어라,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시편 1편) 4. 그밖의 시편들 (1) 지혜시·교훈시 시의 주요 내용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사는 길을 일러주는 시편들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 곧 토라와 하느님의 말씀을 성실히 지키면 주님의 굄을 받지만, 그 말씀을 어기고 듣지 않으면 멸망에 이른다는 교훈을 심어 주지요. 대표적인 시편은 1; 9-10; 14; 19; 37; 73; 112; 119; 127-128; 133편 등이지요.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시편 1편) * 시인은 의인을 무엇에 비유합니까?(1,3) 1편은 지혜시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이기도 해요.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이 시는 행복으로 가는 길과 멸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고 그것을 위해 온갖 애를 다 쓰지만, 누구나 행복하진 않죠. 또 참된 행복이 무언지도 아리송하구요. 1편이 보여주는 행복한 사람은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2절)입니다. 여기서 법은 토라(율법)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전체, 곧 성서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지요. 되새기는 일 역시 머리 속으로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고백하는 일이죠.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그 말씀에 젖어 사는 이들은 날마다 도처에서 자신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게 되죠. 그런 사람은 늘 싱싱하게 살며 제 철 따라 열매를 맺게 되어요. 반면에 아무리 부와 명예를 누려도 악인의 길은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이”(1,4) 아무 소득 없는 멸망의 길이라고 일러 주어요. 마치 이 시편은 격렬한 일생을 마치고 인생의 황혼에서 던져주는 한 선배 그리스도인의 충고이자 유언 같지 않으셔요? (2)왕도시(王道詩) 이스라엘의 왕이 지녀야 할 덕과 해야 할 바를 알려 주며, 아울러 당신이 세우신 그 왕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았지요.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은 자’였는데, 포로기 이후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다시 올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 곧 메시야로 이해되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편들은 메시야 시편이라고도 불려요. 주요 시편은 2; 20-21; 45; 72; 89; 101; 110; 132; 144, 1-11 편 등이지요. 너는 내 아들(시편 2편) 성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의 통치자는 절대주권을 갖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벗어버리려는 헛일을 꾸미는가 묻습니다(1절).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그분의 가르침을 좇을 때만이 통치자의 권한은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하느님의 가소로움과 분노를 사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시편은 사도행전 4,25-26과 13,33에 인용되었죠. 물론 하느님의 말씀이 메시야이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힙니다. 이외에도 시편은 하느님의 현존장소인 예루살렘을 기리는 시온시(46; 48; 76; 84; 87; 122편),순례시(121편), 전례시 등으로 나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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