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 몸에서 나온 것만 다시 한 몸이 될 수 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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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8-11-17 | 조회수616 | 추천수2 | 신고 | ||||||||
문의하신 성경말씀은 창세기 1장이 아니고 2장 24절 말씀입니다. 저는 평신자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님께서는 아담하고 하와만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데 어찌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다는 말이 나오는가? 라는 의문을 던졌는데, 우리가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빛(계시)에 비추어서 읽어야만 비로소 구약이라는 그림자의 실체가 바로 신약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떠난다는 말인가? 라는 문자적인 의문을 품으라고 하느님께서 창세기 2장 24절에 그와 같은 말씀을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저도 가끔 문자적인 의문에 빠짐) 앞으로 구세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한 몸을 이루심을 영적으로 예표하기 위하여 남겨놓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여 읽으며 문자적으로 희한한 의문과 의심에 빠지라고 하느님께서 계시로 남겨두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라는 실체가 오실 때 그림자인 구약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영적으로 신비하게 남겨놓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아담과 하와를 두고 남기신 말씀이 아니고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남기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성경말씀과 교리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차근 차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님께서 문자적으로 의문에 빠지게 된 해당 말씀에는 하느님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음을 바오로 사도의 에베소서 말씀과 교리서 766 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읽으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며 하느님의 오류를 찾아내기라도 한 듯이 의심, 의문을 제기하는 실수를 우리는 종종 범하게 됩니다. 이럴 때마다 성령하느님께 기도로 가르침을 청할 때, 은혜를 베푸시어 성경말씀에 숨겨져있는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님께서 문의하신 창세기 말씀을 바오로 사도께서는 에베소서 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위 31절 말씀은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인데, 바오로 사도께서는 창세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창세기에 그러한 말씀이 바로 커다란 신비라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계시를 통해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 신비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문의하신 성경말씀에 대해 바오로 사도께서 계시로 큰 신비를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예표로 쓰여있는 말씀이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었는데 왜 이런 말씀을 남기셨는가? 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그 당시의 아담과 하와를 두고 하느님께서 남겨놓으신 말씀이 아니고 앞으로 구세주로 오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한 몸을 이루게 됨을 미리 영적으로 예표하는 말씀으로 창세기에 그러한 말씀을 남겨두신 것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 될까요?
답은 여자가 남자의 몸(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즉,한 몸(아담)에서 나온 하와(아담의 갈비뼈)만이 다시 아담과 한 몸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법칙인데, 한 몸에서 나온 것만이 한 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왜, 그리스도는 교회와 한 몸이 될까요?
왜, 그리스도를 머리라 하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까요?
왜, 그리스도를 신랑이라 하고 교회를 신부라고 할까요?
왜, 묵시록 19장에 가면 어린양(그리스도)이 신부(교회,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거룩한 도성)와
혼인잔치를 할까요?
이러한 성경의 상징들은 무슨 뜻을 가지고 쓰여진 것일까요?
즉, 새창조의 신비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써 새생명으로 태어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이신 주님과 감격스럽게도 어떻게
한 몸이 될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의 생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즉 주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주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가 있을 때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하십니다.
한 몸에서 나온 것 만이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든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하와만이 아담과 한 몸이 되듯이, 십자가에서 잠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교회(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교리서 766 : "하와가 잠든 아담의 옆구리에서 만들어졌듯이 교회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꿰뚫린 심장에서 태어났다." 위 교리서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구약의 말씀에 보시면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옆구리(심장)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잠든 상태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잠드신 상태(영적으로는 죽는 것을 잠든다 라고 성경에서 이야기 함.)에서 교회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가 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도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몸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러한 말씀에 바로 커다란 신비를 숨겨놓았음을 계시를 통해 바오로 사도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가 파란 글씨로 표시한 내용을 자세히 보시고 서로간에 대비를 이루고 있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설화가 아니고 심오한 영적인 진리들을 예표형식으로 하느님께서 남기신 것인데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시면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옆구리(심장까지 꿰뚫린 것임)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쓰여있습니다. 피와 물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죄에서 해방됨. 원죄와 본죄에서 죄사함을 받음)을 입고, 물(생명을 상징)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견진)성사를 받을 때 바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이름(본명, 세례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생명(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담에게서 나온 하와만이 다시 한 몸이 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이와 같이 영적으로는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도록 신비하게 쓰여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교리서 1223 : 구약의 모든 예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 교리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문의하신 구약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성취되는 말씀인데 이러한 예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게 된다는 것이고, 바로 바오로 사도께서 계시로 이 말씀(창세기 2장 24절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을 이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라고 에베소서 5장에서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님께서 문의하신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는데 어찌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라는 말이 있는가? 라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은 바오로 사도께서 에베소서 5장 31절과 32절 말씀에서 계시를 통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예표하기 위해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이 된다는 창세기 말씀이 쓰여졌다 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몸이 중요한 말인데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에서 나와 한 몸이 됨을 영적으로 상징하는 말씀인 것임. 그 당시의 아담과 하와를 두고 남기신 말씀이 아님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위에서 설명드린 대로, 영적인 진리에 의하면 한 몸에서 나온 것만이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본성이 같아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같은 생명을 지님으로써 결국 다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신랑 신부와 같이 한 몸이 됨을 영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대로 아담의 몸(갈비뼈)에서 나온 하와만 다시 아담과 한 몸을 이룰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꿰뚫린 심장에서 나온 물과 피로 교회(거듭난 사람들)가 태어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서 나온 것이므로(한 몸에서 나온 것이므로), 다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어린양(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르는 것이고, 묵시록에 보시면 바빌론(사탄의 왕국)이 패망한 후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있게 되는 데, 혼인잔치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천상 예루살렘, 거룩한 도성)가 실제적인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성화가 완성되어 몸의 구속을 입고 불멸의 몸, 영화로운 몸을 받는 것 = 영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추신 님은 창세기 당시에 아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없는데 도대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동일한 말씀에 대해 바오로 사도께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커다란 신비를 깨닫고서 에베소서에 인용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즉, 창세기의 해당말씀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태어날 교회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됨을 영적으로 예표하기 위해 남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원리---------> 한 몸에서 나온 것만 다시 한 몸이 됩니다. 이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하와가 다시 아담과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창세기 2장 24절에 나옵니다.------> 이러한 창세기의 말씀을 바오로 사도께서 계시로 큰 신비를 깨닫고서 에베소서 5장 31절과 32절에서 말씀을 남기셨는데 바로 그리스도(신랑)와 교회(신부)가 한 몸(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온 물과 피로 교회가 탄생함)에서 나와 다시 한 몸을 이룸을 영적으로 예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바오로 사도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계시가 아니고 자신의 의견인 경우에는 개인적인 견해라는 사실을 서간문에 밝히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한 것이며, 특히 신비라는 말이 들어간 내용들은 계시를 통해 바오로 사도께서 깨달은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계시(revelation)라고 말할 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는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것이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그리스도, 성령)께서 직접 알려주셔서 알려주신 그대로 기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사도께서 본인이 전하는 말씀은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해주신 말씀임을 갈라티아서 1장에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계시는데 참고가 되도록 인용합니다.
위 성경말씀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듯이 누구에게서 배우거나 전해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직접 바오로 사도에게 계시로 알려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야 할 것이며, 만일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을 때에는 성령하느님께 기도로 가르침을 주십사 청하면 신비한 방법으로 알게 해주십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지식에 의존하여 문자적인 의심을 품고 성경이 말도 안된다 라고 주장하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을 훼방하는 독성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알량한 지식으로 감히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하느님의 조명이 있을 때 우리는 감사하게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지식으로 읽겠다 라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되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청하는 자세로 읽어야만 우리는 하느님의 온전하신 뜻 안에서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대부분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우리가 공적계시라고 부르는 것인데, 시대를 초월하고 신분계급이나 지식수준에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구원은총을 베푸시기 위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도록 하느님께서 남기신 생명의 말씀이 바로 성경, 즉 공적계시인 것입니다. 그리고 공적계시는 이미 신구약 73권으로 완성되었으므로 더이상 보편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하실 말씀이 성경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보면, 사적계시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서는 애시당초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 신앙인은 사적계시를 믿을 의무가 없다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전히 사적으로 그 사람과 관련된 내용만을 사적계시로 주는 것인데, 그러한 사적계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신앙을 깊게 해주시기 위해 성령께서 개인의 필요에 따라 사적인 계시를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사람 개인에게 필요한 것이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적계시를 보편적으로 확대하려는 정체가 불명한 무리들의 어떠한 시도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접근하는 무리들은 다 장삿속이 있어서 그런 것이므로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일체의 사적계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공적계시인 성경만 공부하려해도 평생이 걸려도 못할 정도인데, 자기자신과 아무 관련없는 사적계시를 도대체 귀한 시간들여서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따라다니며 선전해야될 이유나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적계시는 말 그대로 그 사람에게만 사적으로 필요한 계시이므로 다른 사람들은 알아야 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나주/상주/베이사이드 등의 속칭 성모발현파들은 잡귀신에 빙의된 무당수준의 인간들임을 영적으로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성경과 반대되는 사탄의 주장을 선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내용과 관계없는 사적계시에 대해 설명하게 된 것은 공적계시인 성경과 비교시 성경은 보편적으로 모든 믿는 이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사적계시는 그러한 계시를 사적으로 받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임을 밝히고자 함이고, 나아가서 나주, 상주, 베이사이드 등등의 성모발현파들이 주장하는.... 무당 공수 수준의 해괴한 사적계시 신봉자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선량한 신자들을 미혹하려 하므로 조심해야 함을 당부하기 위해서 입니다.
공적계시인 성경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적계시에 미혹되면 헤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거짓을 가려낼 영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결국 패가망신하고 영적으로는 실성한 사람처럼 만신창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자들의 현혹에 빠져서 우상숭배에 빠지는 대죄를 지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상은 나눔 차원에서 적은 것인데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틀린 것임을 밝혀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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